어른들의 귀에 익숙했던 정월 대보름, 삼짇날, 한식, 단오, 유두, 칠석, 백중, 중양절, 동짓날 등은 사라졌다. 대보름과 동짓날이 그나마 간간히 명맥을 유지했지만 그 생명력도 이제 다한 듯하다. 이들 명절은 50년 사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적을 아예 감추거나 희미한 자취를 보일뿐이다. 그다지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명절날 날짜를 써놓고 보면, 옛사람들은 숫자에 대단히 비중을 두고 삶을 개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숫자는 시간과 연결된다. 명절을 배치해 시간의 마디마디를 연결함으로써 시절(時節)을 누리고 그들의 삶도 유구히 이어져 내려왔다.

음력 8월 15일, 추석(秋夕)도 숫자에서 기인한다. 음력 7월·8월·9월은 가을이지만 사실 태양력이 만든 사계절과 태음력의 시간은 반드시 체인처럼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다. 왜? 음력 7월·8월·9월이 가을이어야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큰 착오이거나 왜곡이지만 오래된 관념이 그렇게 사실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가상의 가을 시즌 중 8월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말 그대로 ‘중추절’이다. 그런데 한자는 또 中秋가 아니라 仲秋를 썼다. 밋밋한 ‘가운데 中’ 글자보다는 ‘사람과 한데 어울린다.’는 글자인 중(仲)자를 택했다. 축제다.

추석을 한가위라고 부른다. 대충 짐작하겠지만, 우리말 같다. 한 가운데라는 의미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가운데’는 시·공간의 지점이다. 가을 가운데 시즌,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공동의 무대가 필요하다. 바로 축제다.

한가위의 출발은 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어원을 신라 가배(嘉俳)에서 찾곤 한다. ‘가위’와 ‘가배’의 차이는 우리말과 한자표기이다. ‘가운데’를 수십 번 빠르게 되새기다보면 옛사람들의 발음에 가까워 질 수도 있다. 그 발음에 한자를 가져다 썼다.

추석의 한자(漢字) 풀이도 흥미롭다. 秋夕, 가을 저녁이라는 말이다. 음력 8월 15일 가을 저녁은 당연 보름달이 장관이다. 보름달이 무대의 조명인셈이다. 밤의 축제였다. 그러나 요즘누가 하늘을 보나싶지만, 보름달이 인류에 끼쳤던 착상은 이루 헤아릴 수가없다.

궁금한 것이 있다. 열두 달의 보름달 중 유독 8월 보름달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었을까? 또 추석은 다른 명절과 달리 지금 살아남았다. 그것도 비교적 성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생명체가 다른 명절에 비해 끈기를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추석에 행해지는 사람들의 동선을 찾아가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모든 명절의 끝판왕은 제사다. 제사는 조상을 함께 기억해 냄으로써 끈끈한 가족애를 되살리지만, 결국 사회 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했다.

설날과 추석 차례상 다음에 이루어지는 정해진 코스는 성묘다. 추석이 살아남았던 것은 바로 성묘 덕이 크다. 물론 한식날에도 성묘를 했다. 그러나 한식날은 음력으로 정해지는 날짜가 아니다. 동지 후 105일째가 되는 날이 한식이다. 좀 복잡한 날짜 셈법이다. 음력 8월 15일과 보름달이 훨씬 살아남기 좋다. 경쟁력이란 그런 것이다.

한가위는 중국으로부터 유래되지 않았다. 성리학적으로 명절로서의 명분이 약할 수 있었지만 수확의 계절과 겹치는 시절에 조상께 감사하는 제사와 함께 성묘하는 패턴이 추석의 위상을 높였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온 나라가 위중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 기간 중 골프 예약, 여행 예약은 늘었다고 한다. 제사와 성묘가 사라진다. 추석도 다른 명절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서 금 석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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