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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조성으로 사라진 용주마을, 대학 발전 터전으로전남대 역사를 찾아서 ②용주마을
전남대역사연구회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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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0  22: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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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용주마을

전남대 개교 초창기에는 캠퍼스 안에 ‘용주마을’이 있었다. 정문 좌측에 위치한 용주마을(용봉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함)은 건물 121동에 대지 1,343평으로, 총 49세대가 살고 있었다. 마을이 학교 안에 있으므로 대학발전은 물론 교육환경 저해요인으로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었다. 캠퍼스를 완벽하게 조성하기 위해 마을 매수는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 당시에는 교육 기반시설인 강의실이나 실험실이 너무나 부족했다. 모든 예산이 교육 기본 시설인 강의실이나 실험실 건축에 우선 배정되다 보니, 마을 철거를 위한 예산 확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마을 철거에 가장 큰 힘을 보탠 것은 대학본부와 교문 설치이다. 1960년대 말까지 교문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제6대 유기춘총장(1969. 5. 21취임)이 취임하자마자 1971년에 설치하였다. 정문, 수위실, 담장(후문에서 정문까지) 배수암거를 4,650,000원을 들여 1971년 5월 19일에 착공하여 7월 27일에 준공하였다. 그 후 제12대 김영인총장(1984. 8. 1. ~ 1988. 7. 31.) 재임시 이를 확장하여 교문 사이로 승용차가 통행하도록 개축하였고, 다시 제 14대 최한선총장(1992. 8. 17. ~ 1996. 8. 16.) 재임시 현재의 교문이 완성되었다. 현재의 교문은 서울남건축사무소에서 설계(1995년)하여1995년 11월 15일에 착공, 1996년 5월 29일에 완공한 것이다.

마을을 철거하기 위한 교문 설치는 지도자의 원려(遠慮)에서였다. 교문이 설치되지 않았더라면 주민들의 저항도 훨씬 강했을 것이며 예산 당국을 설득하는 데도 가시적인 효과가 적었을 것이다.

1974년 9월 18일 제6대 유기춘총장이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하게 된다. 이 시기에 김종필 국무총리가 1975년 6월 21일 학교를 방문했을 때 제8대 민준식 총장(1974. 12. 9. ~ 1980. 6. 11.)은 교육환경 정화 차원에서 교문 안에 있는 마을을 철거하는 비용을 예산에 반영해 줄 것을 약속 받았다. 드디어 전남대학이 교육시설 사업지구로 인정 고시(74. 9. 11)됨과 동시에 용주마을 매수경비(172,818,962원)가 추가경정 예산으로 확정된 것이다.

민준식총장을 위원장으로, 법대 김한기 교수 외 8명과 일반직 허만량 국장 외 11명의 용주마을 매수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추진위원들은 용주마을 주민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설득하였다. 토지의 매수 가격은 감정기관을 통하여 산정하였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교육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에 일차로 5명의 가옥 16동을 매수하였는데 매수가격을 통보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응할 때는 매수가액의 80%를 주고 건물 자재도 본인이 무료로 이설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한을 몇 차례 연기하면서 매수를 독려하여 성과를 거두었으나 9명은 반대모임을 결성하여 끝까지 저항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①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우리보다 나중에 온 대학이 박힌 돌을 파낼 수 있느냐? ② 꼭필요하면 정문을 본관 앞으로 옮기고부락은 담장을 쌓아 차단하고 부락민이 출입할 수 있는 문만 내주면 될 것아니냐? ③ 그렇지 않으면 남쪽으로 더 내려가서 똑같은 평수의 가옥을 집단적으로 건립하여 집단 이주토록 해 달라. ④ 부락민들이 교내에 가지고 있는 다른 토지도 매수해 달라 ⑤ 자녀들의 취직을 책임져 달라 ⑥ 매수에 응하는 자는 배신자이다 등이었으며 협의하러 온 교직원에게 욕설을 하며 만나주지도 않고 박대하는 사례도 있었다.

마을주민 입장에서 본다면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잃는다는 점에서 서운함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의 이주가 이루어짐으로써 전남대학교의 면학분위기 조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국립 전남대학교는 호남을 대표하는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전남대의 발전상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대강당, 도서관 신축을 비롯하여 건설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전남대는 세계로 미래로 용봉이 비약하는 터전이 된 것이다.

   
▲ 1956년 용주마을에서 바라본 금호각 중앙도서관


<참고문헌>
전남대 5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남대학교 60년사, 전남대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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