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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대학의 면모를 갖추다전남대 역사를 찾아서 ① 전남대학교 초창기 역사
전남대역사연구회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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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30  22: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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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설립
1951년 9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국립 전남대학교 설립이 인가되자 제2대 전라남도지사 박철수를 중심으로 기성회를 조직하여 전남대학교 설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재원 마련과 도립 의과대학․농과대학․상과대학, 사립 대성대학의 통합 작업이 난항을 겪게 된다.

1951년 12월, 제3대 전라남도지사로 새로 부임한 이을식은 유림의 향교재단과 도민이 소유한 도시제사주식회사의 주식들을 전남대설립기성회에 기부하도록 하였다. 이을식 지사는 도의회를 소집하여 도립인 의과대학과 목포상대, 농과대학을 국립으로 전환하도록 동의를 받고, 사립 대성대학까지 흡수하여 전남대학교가 출범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했다.

마침내 1952년 6월 9일에 국립 전남대학교는 최상채 의학박사를 초대총장으로 추대하여 진리·창조·봉사를 창학 이념으로 공대·농대·문리대·상대·의대 5개 단과대학, 총 18개 학과로 종합대학의 힘찬 첫 발을 내딛는다.

캠퍼스의 조성

의과대학은 광주의과대학 후원회의 도움으로 건축된 강의실에서 강의를 받을 수 있었으나, 문리과대학은 강의실이 없었다. 농과대학은 구 광주농업학교의 목조건물을 사용했고, 공과대학은 의과대학 소유의 낡은 건물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전남대학교가 정식 개교되었지만 교수연구실, 도서관, 특히 학생들의 수업을 진행할 강의실이 부족했다. 대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대학본부 사무실도 의과대학에 임시로 자리 잡고 있었다.

   
▲ 합동강의실(현 인문대 1호관) 상량식

전남대학교와 전남대학교 후원회는 광산군 서방면 용봉동이었던 기존 농과대학 부지 13만여 평과 그 주변 20만여 평의 부지를 전남대학교 종합캠퍼스로 정하고, 1954년 8월 캠퍼스 조성을 위한 벽돌공장을 건설했다. 벽돌공장은 현재 공대 4호관 부근에 위치했는데, 향후 건물 신축 공사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축 자재인 벽돌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개교 초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문리과대학과 공과대학의 교사 신축이었다. 문리과대학 문학부 강의실(현재 인문대 1호관)은 1954년 11월에 기공되었고, 공과대학 임시교사는 1955년 2월에 기공되었다.

1955년 3월 중앙도서관(지금의 사회과학대학 건물 자리)이 착공되었다. 중앙도서관은 광주여객(현재 금호그룹) 사장인 박인천이 지역 영재 양성을 위해 사재를 희사한 것으로 그의 호를 따서 ‘금호각(錦湖閣)’이라 불렀다. 중앙도서관인 금호각은 1955년 11월 3일, 2층 벽돌건물(건평 331평)로 세워졌다가 1980년 초 이 건물을 헐고 지금의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짓게 된다.

1955년 3월 공과대학 임시강의실 C․D동이 착공되었고, 6월에는 법과대학 본관(지금의 디지털도서관 자리)과 공과대학 본관(현재 학군단)의 건축공사에 착수했으며, 8월에는 학생관(옛 학군단 자리, 지금의 본부 건물 앞쪽)이 주춧돌을 놓았다.

1957년 4월에는 전남대학교 본부 건물(현재 용봉관)과 공과대학 1호관이 각각 착공되었다. 또한 의과대학 캠퍼스에서는 1955년 12월 의과대학 부속간호고등학교의 신축교사, 그리고 1956년 5월 부속병원 수술실 증축공사, 다음 해의 4월 부속병원 본관 건물이 기공되었다.

이처럼 각 단과대학 건물의 착공과 함께 전남대학교 용봉동 종합캠퍼스 건설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이중에서 제일 먼저 준공된 건물은 1955년 6월 9일 공과대학 임시교사 A․B․C․D동이었다.

이후 10월 법과대학 본관 건물이 석조 1층(건평 100평)으로 완공되었고, 11월에는 석조 1층(건평 100평)의 공과대학 본관건물이 준공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55년 12월 25일 문리과대학 합동강의실이 준공되었는데 그 규모는 벽돌조 3층(건평 1,229평)이었다. 이 합동강의실이 완성됨에 따라 그동안 강의실이 부족하여 여러모로 힘들었던 강의 조건이 일시에 해결되었다.

1957년 12월 전남대학교 본부 건물 준공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대학본부가 학동에서 용봉캠퍼스로 이사하여 보다 효율적인 대학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1969년 11월 21일 중앙도서관(현재 도서관 별관)을 기공하여 1972년 11월 1․2․3층 일부를 준공, 1975년 5월에 최종 마무리되었다. 또한 1971년 3월 23일 대강당 공사를 시작하여 1975년 8월 준공하였다.

1969년 여름에는 육군전투병과사령부의 장비 지원으로 운동장 일부를 파서 인공호수를 만들고, 용지(龍池)라 명명하였다. 이는 “전남대학교 캠퍼스가 ‘용봉대’인데 용이 승천할 수 있는 물이 없어서야 되겠는가”라는 풍수지리적 발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1950년대 후반 교정 전경 항공사진

개교시부터 전남대학교 정문 바로 왼편에는 용봉마을(또는 용주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5년 6월 김종필 국무총리와 유기춘 문교부장관이 전남대학교 방문시 학교측의 특별 요청으로 용봉마을 철거 예산 1억 5천만원을 확보하여 캠퍼스 부지를 조성하게 된다. 현재 용봉마을의 흔적으로 정문 왼 편으로 두 그루의 당산나무만 남아있다.

이처럼 전남대학교는 초창기 벽돌공장을 건축하여 각종 주요 건물을 준공하는 등 열악한 교육환경을 극복하고 다른 어느 대학교보다 빠른 속도로 종합대학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 1950년대 인문대 1호관 앞에서 시제를 지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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