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직장인들은 직장에 가지 않는다. 사람이 모이는 것들은 죄다 취소되었고, ‘격리’ ‘동선’ 등의 단어가 세상을 떠다닌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 밖에 나서기를 두려워한다거나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마스크를 끼지 않은 상대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예민하고 긴장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 예민함과 긴장감은 일상을 괴롭힌다. 알게 모르게.

2월에서 3월의 내 달력은 취소의 표시인 쫙 그어진 선들로 채워졌고, 3월과 4월의 달력은 헐렁헐렁하다. 4월은 거의 흰 도화지 같기도 하다. 날짜만이 조용히 인쇄되어 있는 낯선 달력. 이래도 되나 싶은 불안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어떤 사람들은 고립됐고, 어떤 이들은 생계가 끊겼고 어떤 이들은 타인을 혐오하는 법을 터득한 듯 이런 저런 말들을 쏟아낸다. 어딜 가나 코로나의 이야기로 대화가 채워지고 코로나로부터 우리의 안부를 지키자는 인사로 대화가 끝이 난다. 신문도 방송도 모두 코로나 뉴스다. 방대한 양만큼 주제도 다양하다. 코로나로부터 뻗어 나온 다양한 이야기들.

강연 취소, 모임 취소, 수업 취소, 행사 취소, 포럼 취소, 공연 취소 등으로 좌절을 겪었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사람이 많이 모여야만 혹은 와야만 하는 구조 속에 있는 업자들은 또 얼마나 이 시간들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하고 있을까? 수많은 환자들을 지켜봐야 하고 돌봐야 하는 사람들의 과로와 피로는 어쩌나. 우리는 이런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게 될까? 앞으로 꽤나 자주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는 학자들의 전망에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까?

이상한 시간들이다. 좌절과 침묵, 가라앉음의 에너지가 무기력증을 가져온다. 무엇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디도 맘 편히 가지 못하는 시간이 흐른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주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을 끌어올리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지구의 건강성이, 세계인의 활력이 개인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흐른다.

나는 매일같이 가던 발레를 2달가량 가지 못하게 되면서 많이 우울해졌다. 4년 넘게 유지해온 나의 일상이었고, 그 일상은 내가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살아보겠다고 매일을 다짐할 수 있게 하는 자극제이자 활력제였다. 재택근무로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갑갑함을 느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이, 사람들과 지지고 볶는 그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나는 알게 됐다. 더 정확히는 내가 누려온 것,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일상은 사실 나 혼자서 잘한다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일상의 회복을 위해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전국의 많은 의료진들, 확산을 막기 위해 밤낮 없이 힘쓰는 관련 기관의 공무원들, 사태 진정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재능이든 돈이든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 빚지며 나는 오늘을 산다.

도처에 그늘이 있다. 하지만 그 그늘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네 삶은 여전히 고달프고 눈물도 많겠지만, 그 눈물이 우리를 모두 삼킬 수 없다고, 없을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 어떤 굴레도 우리의 탈출을, 행복을 막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나는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조이서의 대사를 인용하고 싶어졌다.

“전에 사장님 과거 얘기 들었을 때, 사장님의 지난 아픔들 내가 다 보듬어주자 했어요. 힘들지 않게 해주고 싶었어요. 외롭지 않게. 사장님의 쓰린 밤을 달달하게 해주고 싶었어. 사장님 생각하면 공허한 내 일상이 사장님으로 벅차올라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요.”

결국 우린 타인의 곁에 서겠다고 할 때만이 치유될 수 있으니까. 일시정지된 일상에서 일시정지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터득해야만 할지도.

신원경(광주트라우마센터 연구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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