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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30  23: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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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문화는 그 사회의 역사적, 자연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면서, 문화의 우열을 부정하는 문화상대주의는 일찍이 문화인류학자들로부터 제기된 이론이지만, 우리나라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90년대 이후가 아닐까 한다.

식민 권력이 강제하는 식민 담론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분석해 낸 『오리엔탈리즘』은 탈식민주의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함으로써 이 시대의 학문과 문학, 예술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문화제국주의의 입장에서, 서구적 시각으로 조명되어 온 ‘동양’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역사와 문화와 민족이 존재하는 생생한 실체이며, 이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그 사회나 민족의 주체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견해는 문화상대주의의 선명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문화상대주의는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다루어질 정도로 보편적인 개념이 되었다. 다른 문화와 인종, 민족 간의 교류가 빈번해진 현대사회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세는 확실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이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문화상대주의적 태도는 이제 다른 인종과 민족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하나의 풍조가 되어 버린 듯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문화상대주의의 본연의 입장인 ‘타인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하기보다는 ‘나의 선택과 자유’를 주장하는 사회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구성원 개개인은 각자의 존엄성과 선택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평등한 존재들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레몽 부동은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은 내가 타인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도 나의 존엄성을 존중해 줄 것을 기대하는 상호주의적 사고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나의 존엄성’만 중요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은 없는 것이다.

청와대 앞 도로를 점령하고 수개월째 야외 농성을 하고 있는 어느 정치 집단, 이들은 시위의 자유를 주장하며, 소음과 쓰레기로 인근 맹학교 학생들의 학습권과 주민들의 생활권을 침해한다. 시위권과 생활권의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 일찍이 제기되어 온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맹아 학생들의 학습권이라고 하는 것도 시위권과 1:1의 가치로 맞물릴 수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소리를 듣는다는 것과 보행 학습을 한다는 것은 삶의 순간 순간을 선택하는 생존권의 연습이다.

민주주의 사회니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이 자유라고 하는 것이 타인의 생존과 존엄을 위협하는 수위에 이른다면 자유의 개념을 훼손하는 일이 아닐까?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에서도 명예 살인이나 여성 할례와 같은 인권 유린적 문화는 존중받지 못하는 것처럼, 자유권의 행사에 있어서도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평등성이라는 입장도 제어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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