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정문에서 법대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박관현열사 혁명정신계승비”가 보인다. 박관현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으며, 민주화운동에 앞장 선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선배다.

1953년 영광에서 출생한 박관현은 군 제대 이후 1978년 전남대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한다. 당시 법대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던 나이든 대학생이었던 그도 법대진학이 곧 고시준비라는 일반적인 법대생의 등식에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신독재와 열악한 민중 생존권 현장이 그를 도서관이나 고시원에 붙들어 놓지 않았다. 유신독재의 말기적 탄압, 민중 생존권이 짓밟히는 현장 등 부조리한 정치현실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는 학생운동, 사회운동에 뛰어 들었다.

그는 1978년 7월 광천동 천주교회 교리실에서 시작된 광주지역 최초의 노동야학 ‘들불’에 참여했다. 들불 야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그는 항상 검정 통고무신에 항상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1980년 3월, 전남대는 학원의 자율화를 요구하는 민주화의 바람이 일게 되면서 합법적인 학생운동 방안이 모색되고 있었다. 또한 총학생회의 부활과 총학생회장 선거가 쟁점이었다. 박관현은 학생운동가로서의 투철한 역사의식, 들불 야학활동에서 보여준 탁월한 헌신성과 성실성, 뛰어난 대중 친화력과 지도력이 검증되어 모든 민주 세력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1980년 4월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박관현 총학생회장은 학생활동 감시기구인 상담지도관실 철폐, 학원 자유 보장, 어용 교수 척결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학내 민주화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그해 5월에는 정치, 사회 민주화와 민중 생존권 요구 등을 주장하며 본격적인 사회 민주화 투쟁으로 뛰어든다.

전국 각지의 대학과 모든 민주 세력의 주장에 발맞춰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시민사회운동이 열악하였고, 전남대 총학생회장의 역할과 위상은 광주·전남지역 운동 내에서 컸기 때문에 ‘박관현’은 지역사회운동의 중요 인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1980년 5월 16일 밤, 박관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서서 군사 독재를 불태우고 새로운 민주 세상을 밝히는 횃불 시위를 주도하며 광주민중항쟁의 시작을 선포했다. 구 전남도청 앞 광장 분수대 앞에서 수만 명의 대학생과 시민들의 심금을 울리며 민주화를 포효하던 연설 내용을 일부 발췌해 본다.

"제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이올시다. 우리가 민족 민주화 횃불성회를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자는 것이요,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모두어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뜻에서,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이 우리 민주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에서, 우리 광주시민, 아니 전라남도 도민, 아니 우리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온 누리에 횃불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박관현은 비상계엄령이 발동된 5월 17일에 계엄군의 검거를 피해 광주를 탈출해 여수 돌산에 피신했다가 서울로 올라가 삼양동과 공릉동의 섬유공장 노동자로 살다가 1982년 4월 체포된다. 체포당시 그는 서울 변두리 가내수공업 형태의 편물공장 직공이었다.

박관현은 광주로 이송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전두환 철권 통치에 맞서 교도소 내 인권개선, 양심수에 대한 차별철폐, 재소자 처우개선 등을 주장하며 3차례에 걸쳐 50일 동안 단식투쟁을 진행하였다. 단식투쟁 와중에 광주지법에서 1심 구형공판이 있었고 그는 내란중요임무종사자로 징역 10년을 구형 받는다.

박관현의 단식 항거는 계속되었고 결국 옥중에서 졸도하고 만다. 졸도 이후 구속집행정지처분을 받은 그는 전남대병원에 입원하였으나, 만 30세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만다. “전체 재소자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다면, 어머니 나는 죽어도 좋아요.” 박관현의 마지막 유언이다.

5월의 아들, 영원한 청년 박관현의 발자취를 찾아 전남대 정문에서 법과대학으로 향하는 언덕 길을 오른다. 정문 옆 관현로를 걸으니 검정 고무신을 신은 더벅머리 청년 관현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초겨울이다.

※ 참고문헌: 『전남대학교 50년사』 , 『전남대 5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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