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으로 동네 작은 서점들이 움직이고 있다. 필자는 이 지원사업 평가단에 참여하면서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작은 서점을 찾았다. 오래된 주택가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은 서점들에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서점은 금방 지성을 공유하는 장이 된다. 적게는 열 명, 많게는 열대여섯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하는 좁은 공간이지만 책을 찾아 온 그들의 마음은 알찼다. 낭독회에 온 사람들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자기의 목소리로 시나 소설 한 대목을 읽고 감상을 나눈다.

이 사업은 각종 매체의 발달과 대형 복합문화공간의 형성으로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동네 서점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기존에도 서점을 대상으로 한 낭독회나 작가와의 만남은 있었지만 작은 서점은 주인 혼자서 운영하기에 이를 지원하기가 여의치 않았었다. 이 사업의 주체는 이러한 작은 서점의 목소리를 듣고 서점과 작가, 독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지역마다 75곳의 서점이 함께하고 있어 문학을 즐기고 싶은 시민들이라면 거점 지역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15곳의 거점 서점은 상주작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니 작가에게도 경제적 지원이 가능하다.

사실, 서점의 어려움에는 시대적인 환경 변화에도 원인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독자의 관심이 책에 없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서점에서 약속을 하면서 책을 읽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순간, 책 속을 걷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우리는 더 서점과 멀어졌다.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이는 더 심각해 졌다.

게다가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은 책장에 꽂힌 책들이 책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서점의 경우 서점 외부를 소품 도서로 장식하거나 책 외에도 환심을 살 수 있는 용품들이 즐비하게 채워져 있다. 그야말로 책은 그것들의 배경이 되어버린 경우다. 그러나 휴대폰에 익숙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바일 화면으로 글을 읽고, 부득이 책을 사야할 경우 온라인으로 할인을 받아 구매한다.

이쯤 되니, 미국작가 하워드 피쉬맨이 쓴 '서점에 입장하기 위해 돈을 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떠오른다. 이 글의 요지는 무형의 지성적인 체험을 제공한 서점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다. 이 글의 필자는 작은 서점들이 단돈 1달러만 입장료를 받아도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서점주는 '유료화' 발상이 품격이 없다고 일축했고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빵이나 커피, 가방 등을 팔아야 한다면 문을 닫겠다고 말했다. 또 한 서점주 역시 "서점은 천국이다. 몇 개 남지 않은 공공을 위한 장소 중 하나"라면서 입장료를 받느니 문을 닫겠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한 서점은 "논의할 가치가 충분한 이야기"라면서 새로운 모델을 시도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가 왜 제기되었겠는가? 우리에겐 소통과 공감의 공간로서 서점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으로 스스로의 마음에 책장을 만들어 이웃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은 서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서점과 작가와 독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서점문화를 만드는 일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 이송희(시인, 국문과 문학박사)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