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 하지마세요’, ‘다리 좀 오므려주세요’, ‘좀 조용히 하세요’ 하루에 수 십 번도 하는 말이다. 물론 ‘속’으로.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 옆 자리 아저씨가 과도하게 다리를 벌려 불편했다. ‘다리 좀 오므리라고 아저씨 혼자 타고 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그때마다 나는 참거나, 자리를 옮기곤 했다.

한번은 버스에 타기 위해 한 줄로 서있던 적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버스에 타려 하니 어린 학생이 바로 내 앞에서 새치기를 했다. 그때도 ‘새치기 그만하라고 새치기해서 먼저 타면 기분 좋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이런 일은 버스에서뿐 아니라 영화관, 길거리 등 어디를 가도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말하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만 말할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잘못한 일인데, 항상 내가 불편했다.

나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에게 나의 불편을 말하면,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기분 나빠할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용기도 없었다. 그런데 말하지 않으니 내가 기분이 나빴다. 잠들기 전까지 괴로워해야 했다.

지겨웠다. 시험, 과제 등 여러 가지로 괴로운 일이 많은데, 모르는 사람으로 인해 괴롭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착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말하기로 다짐했다.

주말에 본가에 갔다가 광주로 오는 고속버스를 탔다. 뒷자리 사람이 출발하자마자 시끄럽게 통화를 했다. 예전에는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괴로워하며 이어폰을 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저기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그러자 뒷자리 사람이 죄송하다며 통화를 끊었다. 생각보다 너무 평탄했다. 상대의 불편에 떨었던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그 사람도 기분나빠하지 않았고, 나도 편하게 광주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불편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 삶이 한결 나아졌다. 편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불편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착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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