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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전남대 학생이었던 법정스님을 기억하며전남대 역사 속의 인물 ⑨ 법정 스님
전남대역사연구회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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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8  23: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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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맑고 향기롭게’ 시민 운동에 평생을 헌신하신 법정스님. 스님이 한때 전남대 학생으로 공부했던 우리 대학 동문임을 아는 이는 많치 않다. 학적부에는 박재철이란 속명으로 상과대학 경제학부(1953∼1955) 재학중 1955년 12월 22일 제적 처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법정스님(1932년생, 본명 박재철)은 해남 우수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목포에 있는 불교종립학교인 정광중학교에 입학했다. 정광중에서 1948년 목포상업학교로 전학을 하고 1950년 학제 개편에 따라 1951년 2년 과정의 ‘목포초급 상과대학’으로 진학한다. 이 ‘목포초급 상과대학’은 훗날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의 모태가 된다.

초급대학 2학년을 마친 법정스님은 1953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에 진학했다. 목포에 위치했던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은 스님이 입학하기 1년 전인 1952년 목포상과대학이었는데 광주에 있는 의과대학, 농과대학, 대성대학 등과 합쳐져 종합대학인 국립전남대학교로 승격되었다.

법정스님은 학창시절 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법정스님은 춘원(이광수)의 책은 빠짐없이 독파하였고 목포의 고서점가를 다니며 철학의 인식론에서 출발하여 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인격완성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꼭 읽어야 할 서적들을 편력하였다. 그런 와중에 틈만 나면 고향인 해남 우수영 선두리로 내려가 바닷소리를 자주 들으며 감수성을 길렀으며, 여러 사찰을 순례하고 섬을 여행하며 정신세계를 넓혀간다.

흑산도에 서는 도광스님과 도천스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스님의 저서 <물소리 바람소리>에서 1950년대 초 여름방학 때 흑산도에서의 두 스님과의 일화를 회상하고 있으며 불교의 수도생활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대학교 3학년 때인 1954년 출가를 결심하고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스님과 함께 <불교사전>편찬에 참여하다가 4.19혁명과 5.16군사 정변을 겪은 법정스님은 1960년대 말 동국역경원의 불교경전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이 시절 불교신문에 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다양한 글을 게재했다. 1973년에는 불교신문의 논설위원과 주필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또 불교경전 번역일을 하며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고 유신철폐 개헌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1975년 인혁당 사건의 충격으로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가 걸망을 짊어지고 송광사로 돌아간다.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홀로 살았다.

1976년 처음 발간한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산방한담>, <오두막편지>, <버리고 떠나기>, <산에는 꽃이 피네> 등 30여 권의 책을 낸 수필 작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대표작 <무소유>는 370만 부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수환 추기경은 <무소유>를 읽고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해 종교는 다르지만 법정스님과의 친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6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었다.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강원도 산골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2007년 폐암이 발병하여 3~4년간 투병생활을 하였으며 ‘장례식을 하지 마라, 관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내가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그리고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 라는 유언과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되는 모든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9세(법랍 54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던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물질만능주의 시대인 오늘날 우리 가슴에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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