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 소설가, 사회운동가로서 삶을 살아온 송기숙 교수를 한 단어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당한 말이 있을까? 지식인의 사전적 정의는 “지식계급에 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며 사회에 참여하여 잘못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송기숙 교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수식어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송기숙 교수의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사건은 1978년 6월 일어난 ?우리의 교육지표선언?이다.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유신의 종말인 1979년을 향해 달려가던 1978년은 유신독재의 짙은 어둠이 무겁게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었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은 강의실을 나가 투쟁에 나서고, 교수들은 시간표를 짜서 학생들을 감시하고 지도보고서를 제출하기를 강요받던 참담한 시절이었다. 송기숙 교수는 정치권력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상황 속에서 교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뜻을 함께 하는 교수들을 모아 성명서를 낼 계획이었으나, 서울 쪽 교수들이 서명을 철회하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전남대 교수 11명의 이름의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성명서는 국민교육헌장의 비판으로 시작해 우리 교육을 멍들게 하는 유신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교수들이 정치권력에 집단적으로 저항을 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성명서가 발표되자마자 송기숙 교수는 구속되고 나머지 10명은 의원면직 형식으로 강제 해직되었다. 교수들이 잡혀간 이틀 뒤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은 교수 석방을 외치며 떨쳐 일어났고, 30여 명의 학생들이 구속·제적·정학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당시 학생들 위주의 반유신·반독재 투쟁에 사회적 지식인 계층인 교수들이 참여함으로써 학생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이를 계기로 광주 지역 학생운동 세력이 크게 성장하였고,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송기숙 교수는 해직 후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 해 소설 『암태도』를 완성하였다. 1년여를 복역 후 석방된 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내란죄를 적용받아 다시 징역 1년을 복역하였다. 그리고 1984년 대학에 복직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나갔다. 1987년 강만길, 이영희 등과 함께 5.18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을 편찬했으며, 같은 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의장이 되었다. 1996년에는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을 맡았다.

송기숙 교수는 강의와 사회적 참여 외에도 1965년 문단에 데뷔한 이래 작품 활동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구체화하여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1920년대 반봉건적·반일본적 소작쟁의를 소재로 한 『암태도』,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한 『녹두장군』 등은 이러한 작자의 정신이 잘 드러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에는 <교육지표사건>이 일어난 지 35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 중 변호사 수임료를 제외한 전액인 7천여만 원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이러한 공로와 높은 뜻으로 기려 전남대학교는 올해 6월 송기숙 교수를 제12회 <후광학술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고문 후유증 등으로 투병 중이라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부상으로 받은 상금 전액을 대학발전기금으로 기증하여 과연 송기숙 교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오늘 우리는 천문학적인 양의 지식이 범람하는 지식 홍수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과거 지식인들과 비교할 때 훨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식의 총량이 많다고 해서 존경받는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상반된 말과 행동들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도서관을 나와 인문대 2호관으로 걷다 보면 왼편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검은색 책 모양의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07년 세워진「교육지표선언」 기념 조형물이다. 검은 대리석은 유신체제 아래 암울했던 대학을, 겹겹이 쌓인 5권의 책은 학문·대학·시간의 흐름과 역사·5월의 광주를, 11개의 새싹은 새로운 교육의 싹을 틔운 서명 교수들을 상징한다. 「교육지표선언」 전문이 음각되어 있는 전면부 하단에는 서명에 참여한 11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명노근, 김두진, 김정수, 김현곤, 배영남, 송기숙, 안진오, 이방기, 이석연, 이홍길, 홍승기.

요즘 우리 사회는 존경받을 만한 스승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 했던 사람들이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전남대의 이름들이다.

※ 참고문헌: 『전남대 5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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