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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악어2019 전대신문문예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강백선 (디자인·15 )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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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3  14: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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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강백선(디자인·15)


한 번 잘린 손가락은 자라지 않는다. 레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숙지하고 또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프레셔, 우리들은 이놈을 조심해야 한다. 반복되는 손놀림, 밀고 당기는 일. 유치원 때 배웠던 손장난들, 도리도리 잼잼. 이걸 써먹을 데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배운 건 다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이놈 앞에서 알았다. 정글 숲을 기어서 가듯 낮은 자세로, 빠르게 넣고 빼는 일. 방심하다가는 손모가지가 날아간다. 혹여나 의도치 않은 실수로 기계를 끄게 하면 잔업 때문에 집에 가기는 글러 먹은 것이다.


출근버스는 경기도 끝자락까지 운행했다. 일하러 오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서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건 다 김에게 들은 이야기다. 내가 아는 이 사람들의 신상정보는 흡연 유무 정도, 김은 쉬는 시간이면 담배를 같이 피워줄 사람을 찾아다니려고 공장 한 바퀴를 돌곤 했는데 이런 유형은 빠른 정보력이 되니까 한 명쯤 데리고 다니면 좋다. 김은 오늘도 시끄럽다. 버스는 좁다란 공장부지를 지나 약간 산길로 빠진다. 오르막길. 어디에선가 팔려오듯 굳은 표정의 희망도 없는 사람들. 그들과 하루 내내 지내기를 몇 년이다. 다들 돈을 벌기 위해 왔다. 가축만도 못한 놈들이 모인 게 분명하다. 회사에서 사람 취급을 안 해줘도 돈만 벌면 그만이었다.

나와 김은 변기들을 검수하는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이직을 했다. 바로 옆 공장에 다 사장도 같지만 조금 다른데 이곳은 부레와 같은 변기 부품을 프레셔로 찍어내는 일을 시킨다. 도자 공정과 이쪽 공정의 부품을 다 조립해야만 마지막에 출고 공정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집집마다의 화장실에 배치되는 것이다. 사장은 이 공장 덕분에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팬티를 내릴 수 있게 된다고 자부심을 심어주곤 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

오늘 또 그런 일이 있었다. 집중하지 않다가 손톱이 갈려버린 이야기. 다행히도 손톱 끝이 나가서 망정이지 바보 같은 자식. 김민수. 아직 26살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아직은. 이 일 처음 아니잖아. 너 아마추어야? 집중을 안 해서 그래 이놈아. 어리다고 다 괜찮은 건 아니라고. 잘 알아두라고. 네 형. 호들갑은. 에이 자주 본 일이잖아. 김은 빨리 퇴근했지만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퇴근 버스뿐이었다. 김은 퇴근 버스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그렇게 떨다가 못 참겠는지 팀장에게 말을 하고 나가는 팀장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누가 손가락이 이렇게 됐다고 작업이 멈추지는 않았다. 공장은 돌아가야 하고 누군가는 손을 넣었다 빼야 한다. 김이 나간 이후로 사람들은 잡생각을 멈췄다. 다들 자신의 손에 집중하기 바빴다.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이 날아가는 상황에서 순간의 방심은 금물이었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잘리는 주기를 세야겠다. 추수감사절이 얼마 뒤였던가.

어이 검수하던 놈. 네. 그 뭐 너 프레셔 작업해봤지 그지. 그렇죠. 민수 빠졌으니까 여기서 일하라고. 네. 너 지금은 때빼 하고 있지. 네네. 어우 알겠다. 빨리 작업 들어가.

기계의 때를 빼는 일을 하는 사람 들을 때빼라고 부른다. 손가락을 잃게 된 사람들은 레일 작업에서 때빼로 빠지게 된다. 때빼들은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물건들을 퉁퉁 치고 다닌다. 다른 사람들은 베어링마다 크기마다 소리가 다르다는 걸 알긴 할까. 도 도#. 플랫한 미동 프레셔의 소리 끝의 진동에도 음이 있다는 걸 알까. 반음정도 차이 나는 높낮이를 잘 알고 있다. 1번 레일의 소리 퉁퉁 2번 레일의 소리 통통 3번 레일은 끼야악. 여긴 손가락의 무덤이다. 대개 멍청하거나 혹은 집안 사정이 안 좋다거나 하는 애들을 3번 레일로 들어가게 된다.
 
김. 그놈이 빠진 이 주일 동안 나는 레일의 일을 다시 하게 되었다. 돈이 급했다. 솔직히 때빼일만으로 버는 돈으로는 갚을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이곳의 때빼는 4명, 최근 3명이나 늘게 되었다.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된 건 3번 레일 때문이다. 대부분 3번 레일에서 손가락이 잘린 사람들이 때빼로 빠지게 되었다. 지금 네 명의 때빼 중 3명이 3번 레일 때문에 때빼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김도 이번에 3번 레일로 발령을 받았고 소식으로 김은 손가락 끝에 아주 작은 짓눌림이 있었다고 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말은 했지만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손톱이 자라지 않게 된다고 했다. 여기에선 별일 아니지.

때빼의 존재 이유. 산재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서. 사실은 없는 직무를 만들어 낸 모양이다. 이곳의 때빼는 나 혼자로 충분했다. 공장의 특성상 이물질이 많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주요 부위만 스윽 닦아내면 될 일이었다. 보이는 데만, 반짝일 필요는 없게 그 정도로만 닦아내면 되었다.

보직 변경이 아니다. 일종의 사형선고였다. 손가락이 잘렸다고 회사에 소송을 걸기 전에 직무를 바꾸는 방식이다. 저번에 어떤 놈이 손가락이 나갔는데 회사를 상대로 8천만 원과 산업재해 등 징하게 받아서 갔다. 사장은 바락바락 화를 냈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다 잘릴 줄 알라면서 겁을 주었다. 그런데 오늘 김이 손가락을 잃었다. 저번에 그 사람이 3번 레일에서 일을 했었는데 3번 레일은 회사가 차려진 그 날부터 돌아가던 기계였다. 회사가 점점 커지고 2번 레일 1번 레일 순으로 새로 지어졌는데 10년 전 번개로 회사에 불이 났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계다. 3번 레일을 제외한 4개의 레일은 화재 이후 새로 만들어졌고 6번 레일은 이후에 증축공사로 인해 또 만들어졌다. 그런데 오늘 김은 3번 레일에서 일을 했고 다치게 되었다. 팀장은 레일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을 항상 하라고 한다. 다른 기계와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소리가 도#과 레의 경계에서 징하게 울려 퍼지는 것뿐이었다. 사장은 요새 직원을 돌릴 때 사장은 먼저 이 사람이 대충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부터 물어봤다. 보나마나다. 3번 레일로 넣기 위함이다.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성훈아 너도 일 그만할 때 되지 않았냐? 너도 하고 싶은 거 있다며. 피아노였나 뭐 실로폰이었나. 마림바요. 마림바? 그건 뭐 하는 거지. 타악기 있어요. 아 그래? 재작년에 변기 치면서 변기 다 깨 먹었다는 게 너냐? 아 네. 뭐 저인가 보죠. 어유. 생긴 건 멀쩡한데 이상한 놈이네 증말. 안 짤린 게 다행인 줄 알어.

팀장은 사장의 아들이다. 프레셔 및 레일 관리를 하고 있는데 처음 면접을 봤을 때 봤던 표정은 정말 으으. 사람을 아주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던 표정 나는 그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팀장은 갑자기 작업을 중단하더니 뭔가를 말하려고 애를 썼다. 구태여 뭔가를 설명하려는 태도가 거슬렸다. 꺾이는 음절 사이로 프레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쾅 쾅 말 잘하는 척해보려고 하지만 다 나온다. 쾅 너네들 쾅 다시는 쾅 이런 일로...... 쾅

잡담. 이곳에서는 쓰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모였다. 귓전에 들어왔다가 나간다. 고독은 고혹적이었다. 타악기 소리와 비슷했다. 작업을 할 때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굉음이 귀에 익어버려서도 있겠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신뢰가 없었다. 그럴 것이 이름도 알 필요가 없고 이야기도 알 필요가 없다. 그저 맞춰진 시간에 손을 넣었다가 빼면 될 일이다. 애초에 이 공장에 들어온 것도 그랬다. 잠깐 있다가 다시 나가면 될 일이다.

귀에 이명이 사그라지고 정신이 팔릴 때가 되면 팀장이 와서 또 서성거리기 시작한다. 잔업을 시작해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레를 찍어내는 프레셔가 멈췄다. 서서히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찍어 내왔던 것처럼 혹은 경직된 표정으로 멈춰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띠꺼운 새끼. 프레셔는 정말이지 띠껍다.

누나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매일 연락이 와서 몸이 성한 지부터 물어보고 나서는 우리나라의 유통구조를 말해주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일. 신경을 그만 쓰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곳에 온 사람 중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없을 리가 없다고 했다. 돈을 벌면 이런 일쯤은 다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니 알 수 없다고 했다. 끽해봐야 공무원 주제에. 말이 많다. 시도별로 우체통은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메일의 모양이 왜 편지 모양인지 모를 거다. 없어질 직업이나 하는 일. 부레는 가라앉지 않을 거고 사람들은 똥을 싸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고 그래서 공장은 무너지지 않을 거다.

웬일로 사장이 출근했다. 6시 30분 다른 때빼들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왜 아직 기계가 안 돌아가는 거지? 이제 틀려구요. 새로운 직원이 있다. 아 그래요. 여자 직원이야. 아 그래요. 그래 하던 일하라구. 아 네.
사장은 평소와는 다르게 상냥했다. 옆에 20대로 보이는 앳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목조목한 코와 어깨쯤 내려오는 머리, 수수하게 생겼지만 의외로 눈빛이 강하다. 이름은 알 필요가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지만 알면 될 일이다. 여자는 사장과 공장 한 바퀴를 돌더니 3번 레일 앞에서 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제기랄 또 뭣도 없는 년이군. 사장의 표정은 웃김을 넘어서 우스웠다. 50살이나 먹고선 뭘 그렇게 침을 흘리는지.

이름 모를 여자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한 지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1미터쯤 떨어져서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똑같이 손을 넣었다 뺐다. 이제는 조금 합이 맞는 것 같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의 리듬을 끊임없이 지켜본다. 그 여자가 뒤늦게 빼는 타이밍에 나도 따라서 손을 뺀다. 조금 짝궁뎅이인 것 같다.

김은 돌아와서는 담배를 하나도 피우지 않았다. 짓눌린 손가락에 담배를 끼울 수 없었다나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 김은 때빼가 아닌 레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은 새로 온 여자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바로 말을 걸었다.

“원래 제가 여기에서 일했던 거 아세요? 인수인계해줘야 하는데 잠깐 나와 봐요.”
“아 괜찮아요. 뭐 별일 없어요.”

대화의 사이사이에는 프레셔 소리가 가득했다. 대화는 끊기지 않지만 무전기 같은 방식으로 진행이 됐다. 쾅. 쾅. 여자는 김이랑 함께 어디를 잠깐 다녀오더니 표정이 싹 굳은 채 서로 자기 일을 하러 갔다.

김은 나를 보자마자 배시시 웃었다. 저년 저년 거리면서 욕지거리까지는 아닌 험담을 했다. 다른 때빼들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형한테만 얘기해주는 건데 라는 말로 서두를 내용을 잘라먹었다. 잘 들리지 않는다. 머저리 같은 놈. 특유의 능글맞은 발음이 유독스러웠다. 김은 여자와 사장이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말하고 다녔다. 여자는 잔업도 빠지고 툭하면 회사를 나오지 않았다. 이곳의 경리는 사장의 먼 조카쯤이나 된다고 했다. 김이 저 여자는 월급을 얼마나 받냐 물었더니 직원들의 월급은 다 똑같다는 말을 해줬다고 했다. 걔가 3번 레일에 배치된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그렇고 그런 관계라면서 때빼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 큰 입에다가 손을 왔다 갔다 하며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손놀림이 느린 게 얼마 안 가 잡아먹힐 게 뻔하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냐면 먼저 이름이 혜진 이라고 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잠깐 돈을 벌러 온 것이라고 했다. 나이는 스물다섯 정도 김과 나이가 비슷하다. 김은 여자가 행동이 느리고 뒤뚱뒤뚱 걷길래 혹시 장애인이면 다른 공정으로 가라고 권유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혜진은 여기가 내 자리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단다. 오늘도 공정에서 몇 시간의 몇 백 번의 몇 천 번의 몇 만 번의 찍어냄과 진동이 지났다.

기계가 멈췄다. 김은 잔업을 빠진다고 했다. 그리고 스멀스멀 혜진 옆으로 가더니 이야기를 걸었다. 퇴근 버스는 두 가지가 있다. 잔업하기 전에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작업이 끝날 때쯤 돌아와서 잔업을 마친 사람들을 태우고 다시 돈다. 김과 여자는 잔업 없는 퇴근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나는 이곳에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철가루들은 입으로 들어오고 철근은 발에 치였다. 인생이란 대개 그런 것이다. 잔업이 끝나면 사람들은 옷을 갈아입고 출구로 느릿느릿 모인다. 어차피 빨리 가도 갈 곳은 정해져 있으니 정해진 시간에만 탑승하면 될 일이었다. 양말에 구멍이 났다. 비가 왔다. 퇴근길의 논바닥이 잠겼다. 초록색의 셔틀버스는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늪지대를 지나간다. 천천히. 앞을 바라보면서. 일종의 수류를 남기며 유유히 지나간다.

아마존은 우기가 있다. 비가 내리면 정글은 잠기고 만다. 그 울창함 안에서 수면이 올라갔을 때 따라서 올라가는 모습을. 마음은 둥둥 뜨고 만다. 변기 후면의 뚜껑을 열면 부레가 있다. 악어 몸 안에는 부레 같은 게 있는 걸까. 그래서 가득 차버려도 수면 위 유유한 몸놀림으로 지나가는 건가. 돈은 필요 없는 건가. 산란기에는 또 어떠지. 아마존의 나무들은 프레셔로 찍어내는 건가. 거기 원주민한테 프레셔 소리를 표현하자면 번개 아니 와장창 우르르. 쾅쾅.

아마존 엘리게이터는 멀지 않은 동네에 내려주었다. 비는 바닥에 가득 차버렸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러 가는지 말을 하지도 않고 가버렸다. 문을 연다. 엘리베이터. 아니 엘리게이터가 입을 쩍 열고 기다린다. 입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뺄 일은 없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바닥을 보니 몸의 기름 둥둥 떠다닌다. 그래 때는 벗겨내야지. 초록색 나일론 타월로 몸을 문댄다. 굳은 갑피가 벗겨질 때마다 검은 각질이 후두둑 떨어져 나왔다.

이번 주는 금요일에 출근을 안 해도 된단다. 두 달 만에 본가에 내려갔다. 엄마는 나에게 보리밥을 준다. 애가 몰라보게 컸다. 손가락이 왠지 짧아 보였다. 하긴 아기는 손가락이 원래 짧은데 말이다. 엄마가 애한테 실로폰 같은 걸 사줬나 보다. 내가 싫어할 거 알면서도 사준 거다. 애가 좋아하잖냐.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집에 오니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핸드폰비 가스비 전기세 월세 학자금 대출에 부쳐야 할 돈도 너무 많았다. 월급에서 이것저것을 빼면 십만 원 남짓 남는다. 뭣 같은 거 기분이 나쁠 때는 뭔가를 치고 싶다. 무지하게도 마림바를 쳤다.
 
*
악기는 소리를 낼 때 떨림을 잘 주목해야 한다. 때린다는 것 부딪히고 서로의 떨림을 기억한다. 막대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길쭉한 막대에서 신음 같은 것이 튀어나온다. 변기를 칠 때도 마림바를 칠 때도 똑같았다. 나는 그저 칠뿐이었고 소리는 그들이 냈다. 혜진의 신음소리도 그 음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말이 지나고 김이 돌아온 자리에 때빼로 복직하게 되는 줄 알았다. 혜진이 보이지 않는다. 사장이 금요일에 나오지 말라고 한 이야기. 사장이 혜진을 따로 불러 일을 가르쳐줬다고 했다. 그런데 그간에 일이 터졌나 보다. 사장과 팀장은 나오지도 않았고 이름 모를 선배라는 사람이 나의 보직을 바꿨다. 2주간 또 3번 레일이 비워졌다. 나는 다시 2주간의 보리밥 게임을 해야 했다. 보리. 보리. 보리. 보리. 악어는 보리를 먹지 않는 이유가 있다. 쌀은 사실 살이었던 거다. 보리. 보리. 보리. 살! 보리. 보리. 보리. 살!

2주간의 프레셔 작업이 끝났다. 혜진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나타났다.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인사를 하고 싶다. 다친 거 치고는 얼굴이 말갛다. 결국 혜진은 때빼로 빠지게 되었다. 때빼가 벌써 5명이다. 사장이 나를 부른다. 이제 레일 관리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직무가 바뀔 거라고 했다. 나에게 남은 자리라곤 3번 레일밖에 없었다. 3명의 손가락을 앗아간 그 녀석, 벌써부터 손가락이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 내일부터 직무가 바뀐다고 했다. 다시 변기 검수 공정이란다. 안 된다. 나는 그곳에서 고막을 잃었다. 내가 왜 때빼로 일하고 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장은 나한테 다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옆에 있긴 하지만 엄연히 다른 공장인데 이건 보직이 바뀌는 게 아니라 이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검수는 돈을 적게 받았고 때빼 일은 하는 일에 비해 돈을 좀 받았다. 사장한테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레일로 들어가겠냐는 말에 나는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혜진이 자기가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안 된다 라고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혜진은 나와 함께 때빼 일을 하지 않으면 다시 레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사장. 괄약근 같은 입을 움츠렸다가 편다. 알았다고 하고 팀장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서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이름이 혜진 씨라고 들었어요. 뭘요 매일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하게 누구 땜빵만 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상관없는데요 뭐. 아니요. 도와준 게 아녜요. 그냥 할 말을 했을 뿐이에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보답이라도 해드려야 하는데. 아니요. 것보다 당신은 저한테 쓸모가 있어요. 일단 일을 하고 다음에 이야기해줄게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혜진은 눈을 항상 부라리고 다녔다. 피부는 뽀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딱딱한 각질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왜소한 몸과 오목조목한 얼굴이 눈을 자꾸 끈다. 나이에 맞지 않은 강단과 표정이 엄마 같았다.

노동자들은 찍히기 전의 쇳덩이를 틀에 맞추기 위해 손가락을 넣어야 했고 찍혀 나온 부산물을 손으로 빼내야 했다. 그 빠르기가 얼마나 됐던 중요하지 않았다 프레셔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켜지고 같은 시간에 꺼졌다. 6개의 레일 위의 6개의 프레셔가 한 번에 쾅 소리를 낸다. 쾅. 쾅. 나는 내일도 이곳에 올 수 있게 됐다. 내일도 그 내일도.

다음날 김과 다른 두 명이 잘렸다. 그 세 명의 공통점은 손가락이 하나씩 없었다는 것과 가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게 다 혜진 덕분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억울하게 잘리지 않은데 도움이 됐다. 오늘도 살아가야 하고 내일도 살아가야만 했다. 조금 서운하기도 한 것이 김은 평소에 말이 많아서 없으니 허전했다. 내 뒤로 졸졸 따라다니던 두 명은 금세 잊혔다. 그들은 돈을 벌거면 다른 곳에서 충분히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 뒤로부터 나는 혜진과 둘이서 레일의 때를 빼냈다. 갈고리 같은 것으로 깊숙이 박혀있는 검은 기름때들을 걷어내기도 했고 보이는 곳만 걸레로 슥슥 닦고 다녔다. 때를 빼기 위해서는 기계의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 때는 다 낄 데에만 끼는 거니까. 혜진은 양치를 잘 하지 않았다. 간간이 이야기할 때 입에서 냄새가 올라왔다. 구취보다는 젖 냄새가 났다.

혜진은 이상한 아이임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듯했다. 방금 가르쳐준 것도 금세 까먹어 버리고 조금 힘든 일이 있다 싶으면 화장실에 가버렸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은 립스틱과 화장이 진해져서 왔다. 실질적인 때빼일은 내가 다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얘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 얘 덕분이니까.

빼낸다는 것은 항상 즐겁지만은 않은 행위다. 있어야 할 곳에 있을 게 아닌 것이 들어간 그 예고 또 그것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때를 빼다 보니 높이를 고정하는 너트가 하나 빠져버렸다. 줄줄이 늘어진 와이어가 묶인 곳과 두 줄로 늘어선 마림바와 이곳에 정체되어있는 진동들. 프레셔의 진동이 볼트와 너트를 헐겁게 만들었다. 텅. 텅.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행위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과 마림바. 텅. 텅. 볼트에는 빠져버린 너트의 거뭇한 기름때들이 끼어있었다. 동. 동. 검정 때들이 충치처럼 늘어져 있으면 마림바처럼 때리고 다니고 싶었다. 딩. 동. 당. 철로 된 쇠판들을 쇠막대로 퉁퉁 치면 손이 저릿저릿한 진동이 몰려들고는 하는 것이었다.

악어는 물소와 같이 큰 동물의 식사를 끝내고 나서는 입을 쩍 벌린다고 한다. 이빨은 모두 송곳처럼 솟아있었으며 사족동물의 가죽까지 뚫어버린다. 작업용 장갑 정도는 스치기만 해도 찢겨져 버릴 거다. 악어는 숨을 죽이고 물가에서 눈만 뜨고 사냥감을 기다린다. 급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물소는 물을 지나가야 한다. 물소는 악어가 물에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모른다. 물소는 물을 지나가야만 했다. 악어는 기다린다. 물소는 물소로 태어난 것 자체로 물을 지나가야 할 운명인 것이다. 사냥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오늘은 잔업이 없다. 대체로 일이 없는 때빼들이 다른 노동자의 잔업을 대신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팀장에게 3번 레일이 아까 멈췄기에 한 번 보고 가야겠다고 말했다. 혜진도 자기도 돕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우리의 눈을 흘겨보더니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병신같이 걷는 게. 팀장은 외제차 키를 검지로 빙빙 돌렸다. 아직 총각이라서 철을 모르는 거다. 너 같은 놈은 결혼하면 끝이고 애 낳으면 끝이다.

악어의 새끼는 알에서 태어나기 전에 성별이 정해진다고 한다. 몇몇 악어는 이미 멸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해진 인생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만. 멸종을 막기 위해 인간들이 운명을 정하는 것은 불합리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했다. 태생적으로 잘 살아남는 종족들은 살아가야 했고 나는 처절하게 살아남아야 했다.

잔업의 시작은 큰 잡동사니들을 쓰레기로 배출하는 데에 있다. 변기 부속 회사치고는 꽤 규모가 있기도 했고 해외로 수출도 하는 편이라 큼직한 물건들이 많았다. 작은 지게차가 겨우 다닐 정도의 레일 사이사이를 오가면서 눈에 띄는 물건만 치우고 바닥의 쓰레기들도 모아서 버리면 된다. 혼자 하면 대충 한 시간 반이 걸리는데 혜진이 오고 나서는 십 분 밖에 빨리 끝나지 않았다. 내가 다하는데 얘는 뭘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기계가 꺼지고 모두가 나간 공장의 소음은 심박소리가 메운다. 프레셔와 같은 템포로 두들겨 댔다. 같은 음계가 아니었다. 레레, 미미, 솔. 오랜 시간 동안 공장에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혜진이 뭐라고 지껄인다. 화를 내는 건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 왼쪽 고막이 다쳤어. 오른쪽에서 말해줘.”
“성훈 나 좀 도와줘.”
“응 무슨 일인데. 아 맞다 잔업은 처음이겠네. 돈도 얼마 안 주는 거 왜 한다고 한 거야. 괜히 하겠다고 해서 너랑 나랑 나눠서 받잖아.”
“너도 나처럼 돈이 필요한 거지? 응? 너도 집에 악어 한 마리를 키우는 거지? 응?”
“무슨 소리야.”
“돈 벌고 싶지? 그래. 회사에 소송만 걸면 돼. 집단소송으로 말이야. 저번에 짤린 그놈들 싸인만 받아 가지구 우리 다섯이서 나누자. 아니지. 아니지. 너도 집에 악어를 기르잖아. 나도 그렇고 말이야. 걔내들한테는 퇴직금이라고 한 일 이천 쥐여 주고 우리 둘이서 나눠 가지자고 응? 이런 뭐 같은 공장 같은 거 안 다녀도 돼.”
“그러면 소송은 어떻게 걸 건데?”
“나 법대를 나왔어.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사장과의 이야기는 다 녹음이 됐다구.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랑 그 새끼가 한 변태 짓거리까지 한꺼번에 소송을 걸 거야. 그런데 회사 막 입사한 내가 모든 걸 안고 가면 안 될 거 아니야. 몇 년 동안 착취당한 너야말로 나한테 필요하다는 거야. 너도 대학 나왔잖아. 이 정도는 다 이해되잖아. 응? 도와줄 거지?”
“애 딸린 년이 그깟 돈 때문에 몸까지 대줘?”
“그깟 돈이라니. 그러면 어떡해. 애가 아프다는데 우리 애 피부가 꾹꾹 굳어서 매일 잠도 못 잔다구. 니가 그걸 알고서 말하는 거냐구. 밤마다 쳐 우는데 병원 갔다 오면 밥은 어떻게 하냐구? 기저귀 같은 건 보험도 안 된대. 그런 건 어떻게 하냐구. 너도 아빠란 새끼가 이러고만 있으면 되는 줄 아냐구.”
나는 혜진의 장갑을 벗겼다. 세 번째 손가락에 붕대로 둘둘 말은 깁스가 보인다. 혜진은 뭐 하느냐고 물었지만 팔목을 꽉 잡고 붕대를 풀었다. 몇 주간 각질에 뒤덮인 손가락이 나왔다. 피도 나오지 않았고 짓눌리지도 않은 보드라운 손가락이 삐져나왔다. 이 년은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나 보다.
혜진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화장실에 간 사이 녹음한 파일을 저장하고 증거자료가 될 만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그리고 늘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아빠도 자기만 믿으라고 해놓고는 돈을 들고 날아가 버렸었는데, 혜진은 아이가 있었고 나 또한 그러니 필사적인 것이다. 필사적이라는 것은 항상 신뢰할만한 것이다. 혜진은 나에게 부탁 두 가지를 했다. 김을 포함한 두 명에게 싸인을 받아올 것, 그리고 나머지는 자기가 다 하겠다고 말했다.
퇴근을 하고 김에게 전화를 했다. 김은 두 번의 통화 거절 끝에 전화를 받아서는 왜 전화했냐고 물었다. 이놈이 정보는 빨라서는 자기가 잘린 경위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다.
형. 이건 정말 아니지 않아요?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뭐가 있는데요? 난 잘렸고 형은 회사에 남았잖아요. 그게 할 이야깁니까? 아니다. 그런 게 아니야. 진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우리 친하잖아 그렇지?
혜진은 고소장을 교묘하게 바꿔서 퇴사 지원금 및 고용보험 혜택자란에 세 명의 이름을 파 넣었다. 혜진의 눈은 부릅떠있었다. 사냥감을 기다리듯 여유 있게 작성되었다. 김은 어디 술집이라고 말을 했다. 종이를 들고서 김을 찾아갔다.

김에게 종이를 들이밀었다. 김은 많이 취한 듯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김의 전화로 잘린 두 명까지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셋은 흔쾌히 싸인을 해주었다. 검은 볼펜에서 잉크가 삐질삐질 삐져나왔다. 이걸 뭐라 부르지? 볼펜 때? 볼펜 똥? 휴지로 쓱 닦아내었다.

모든 일은 비밀리에 진행이 됐다. 혜진은 나에게 병원 좀 다녀오라고 했다. 그 셋의 진료 서류까지 다 받아서 혜진에게 건넸다. 혜진은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 나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뺨에서 구취가 났다.
그 이래로 나와 혜진은 자주 잔업을 마치곤 했다. 완벽한 서류작업. 우리가 하는 일은 역시나 똑같았다. 손을 쑥 넣었다 빼면 된다. 자료가 완성되면 탈의실에 쓱 넣었고 뭔가 보인다고 하면 쓱 빼내었다. 혜진은 이제 나름 일을 잘 하게 되었고 일을 빠지는 일이 없어졌다. 여전히 사장은 밤만 되면 혜진을 불러댔다. 혜진은 결단코 사장과 몸을 섞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요새 돈돈 거리는 횟수가 준 것은 확실했다.
 
*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간만에 아이를 보러 갔다. 일이 잘 풀리고 있음에 아이가 실로폰을 치는 것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아이는 아빠가 누구인지 모른다. 실로폰을 통통 쳐주면 좋아하기는커녕 울어버렸다. 음악도 모르는 놈. 너는 음악 하면 안 되겠다. 엄마는 이제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 애가 밤마다 실로폰을 치면 미치겠다고 말했다. 나는 “원래 애들이 다 그런 거지.”라고 말했다. 애가 기저귀에 똥을 쌌다. 엄마가 똥을 싸면 뭐라고 했는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냄새만 풍겼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놈도 크면 내가 만든 변기에서 똥을 눌 테지. 그때가 되면 기저귀에 싸듯이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싸도 되는 거지.

사냥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적어도 악어는 그랬다. 서류상으론 김도, 혜진도 다른 노동자들도 악어에게 손가락을 씹어 먹힌 것이었다. 와그작와그작. 3번 레일은 결함이 있었던 것이고 악덕 사장은 가엾은 노동자들을 그곳에 밀어 넣은 것이다. 회사에 소송을 걸지 못하게 때빼 일을 시켰고 혜진은 성추행을 당한데다가 나는 고막을 잃었고 김과 두 명은 회사에서 잘리게 된 것이다. 이런 파렴치한 사장의 행보는 서류와 글자가 되어 법원에 이르렀다고 했다.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팀장은 나와 혜진을 불러서는 바락바락 댔다. 다행이다. 왼쪽에서 말한다. 입 모양에 맞춰 끄덕거리기만 했다. 혜진은 쑥 넣었다 쏙 빠지는 밀물과 썰물처럼 말을 막 했다가 입을 막았다가를 반복했다. 기계는 돌아가는데 아무도 일을 하지 않았다. 이제 이 프레셔 소리도 얼마 뒤엔 못 듣는다는 사실은 험악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평소라면 팀장이 목에 핏줄을 세우고 직원들한테까지 욕을 할 게 분명한데 이런 것을 보면 일은 잘 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퇴근 버스는 타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나가는데 3만 원이 나왔다. 만 오천 원씩 나눠서 냈다. 이젠 뭐 아깝지 않은 돈이다.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법정에 선 혜진은 미친 듯이 울었다. 숨을 헐떡거리기도 하고 매일매일 무서워서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일한 솜씨가 있는지 박자감이 훌륭하다. 울기 시작할 타이밍에는 등을 활처럼 뒤로 굽혀서 뒤로 퉁겨 몸에 진동을 일으켰다. 입은 쩍 벌린 채로 눈은 그 와중에도 부릅떴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눈물이 나왔다. 악어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맛있는 물소 한 마리가 강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디에 있던 악어는 도사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물소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사장은 예전에 소송에서 진 이후로 법무팀과 자주 접촉했다고 한다. 김은 왜 그걸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끝나면 김의 전화번호를 지워야겠다. 애초에 믿을 수 없는 놈이었다. 그러니까 내 상황이 이렇게 된 거다. 우리 측 변호사는 사장의 성추행 건에 대해 다시 꼬집어서 물어봤다. 사장은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혜진의 귀는 빨개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혜진의 붕대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밤사이에 비가 많이 내렸다. 뉴스에서는 어디 댐이 무너졌다느니 누가 실종되었다느니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혜진은 옆에서 옷을 벗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아까 힘들었다느니 무서웠다느니 다 거짓말인 게 분명했다. 일어나면 목욕을 시켜야겠다. 하는 내내 강물과 같은 냄새가 났다. 살은 뽀얀데 온몸에 각질이 갑피처럼 붙어있었다. 자는 사이에 등을 손톱으로 벅벅 긁어본다. 손톱이 부러졌다. 혜진이 몸을 움츠리더니 등을 돌렸다. 부릅뜬 눈은 나를 잡아먹을 것 같다. 혜진은 일어나서 물을 찾았다. 텅텅거리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각질이 조금씩 떨어졌다. 이런 건 병 같은 거냐 물으니 닥치라고 한다. 이제 어쩔 거냐는 물음에 알아서 할 테니 또 닥치라고 한다.
“성훈. 나 엉덩이 또 때려줘.”
“닥쳐.”
나는 바로 출근을 하게 됐다. 혜진은 택시를 타고 알아서 집에 들어갔다. 팀장이 말하기를 레일 수리 보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며 때빼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단다. 팀장은 회사가 개판이 되어도 일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대신 사람들 없는 주말에 잠시 들러서. 혜진이 없는 자리에서 있지도 않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할 일이 없다. 통. 통. 통. 레일들을 치고 다닌다. 마림바 소리가 경쾌롭다. 3번 레일을 막대기로 두들겨 팼다. 손에 전율이 느껴진다. 저번에도 이러다 다 깨 먹었었는데 상관없지. 이제 난 회사에 나오지 못할거고 프레셔는 변기보다 강하니까. 아쉬운 건 내가 아니니까 괜찮다. 이 뭣 같은 것 때문에 일이 다 꼬였잖아. 얘만 없었으면 때빼는 나 혼자였을 거고 말이야. 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을 앗아 갔는 줄 알아? 이 더러운 년아. 텅. 퉁. 텅. 통. 탕. 마림바는 리드미컬하게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한참을 치다 보니 손이 욱신댔다. 손을 보니 빨갛다. 쇠막대를 놓쳤다. 이번 주에 물량을 못 맞췄는지 옆 공장은 가동 중이다. 내가 했을 땐 저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쯧쯧. 바보 같은 자식들. 물량을 맞추지 못한다는 건 누군가의 편함이 없어진다는 것과 같잖아 그렇지? 나는 가동되지 않는 프레셔에 손을 쑤욱 넣었다가 뺐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어색하다. 손등을 하늘로.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해서 파충류 알 같은 부레를 후두두둑 빼내야 한다. 허공에서 몇 번이나 손을 넣었다가 뺐다.

공장의 쇠문이 갑자기 열린다. 팀장이다. 비가 많이 왔는지 팀장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새끼. 주말에 괜히 나를 부른 게 아니었다. 팀장은 목에 핏줄을 세웠다. 욕을 하면서 뚜벅뚜벅 걸어온다. 몸이 벌벌 떨린다. 리드미컬하게.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회사를 상대로 엿을 먹여? 진짜 죽어볼래? 너 오늘 잘 됐다. 그냥 죽자 너. 팀장은 바닥에 떨어진 쇠막대를 들고 달려들었다. 뒤로 엎어지는데 아까 프레셔를 칠 때 녹음시켜놓았던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팀장은 욕을 지껄이고는 쇠막대를 땅바닥에 내려쳤다. 탱그랑 소리가 공장에 울려 퍼졌다. 3번 레일에 등을 기대고 팀장을 바라봤다. 눈을 부라리며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며 돌아갔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게 다 혜진이 그년 때문이다. 그리고 김 때문이다. 나는 단순히 마림바를 좋아하는 소년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사장 때문이었고 팀장 때문이다. 아니 엄마가 공장에나 들어가랬으니 엄마 때문이다. 혜진에게 전화가 왔다. 이야기 좀 하잔다. 공장으로 오라고 했다. 혜진은 수영해서 왔는지 온몸이 다 젖은 채로 공장 문을 열었다. 탈의실에 복사해놓은 자료를 가져와서는 물 묻은 손으로 찢어버렸다. 혜진은 앉아서 아직 서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듣기 싫었다. 한쪽 다리를 뻗고 반쯤 드러누워 버렸다. 혜진이 악을 질렀다.
“악을 왜 질러. 지금 중요한 게 그거냐? 나 방금 죽을 뻔했다고.”
“괜찮아, 정신 차려. 다시 증거를 모으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니가 사장한테 손가락이 프레셔에 깔렸다고 말했지. 그거 다 들통나게 생겼잖아. 넌 지금 서류상으론 손가락이 없어. 그렇지? 그래서 때빼가 된 거고 그렇지?”
혜진의 부릅뜬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멍청아.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너가 애초에 고막이 나갔을 때 때빼를 안 하고 소송을 걸었으면 된 거잖아. 그러면 나도 이럴 일이 없었잖아.”
“닥쳐, 니가 녹음했다는 파일들 다 프레셔 소리 때문에 증거자료로 채택되지도 않았잖아. 만약에 계속 진행한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사장이랑 그런 건 그렇다 치고 제일 중요한 건 니년의 의료 기록지잖아. 넌 병원에 간 적도 없고 손가락이 잘린 적도 없어. 자 넣어 손가락을 넣으라고 그리고 어디 좀 사라져 있으라고. 난 모르겠으니까 그 뒤엔 너가 알아서 하라고. 빨리 악어에 손을 넣으라고.”
혜진이 울기 시작한다. 니년의 눈물은 다 봐버렸다. 가식적인 년. 역겨운 년. 온갖 욕을 다 내뱉어 버리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혜진이 갑자기 울음을 그쳤다. 잘 들어보란다. 자료를 모으던 도중 어느 날 생리가 멈췄단다. 법정에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게 자기의 히든카드라며 킥킥댔다. 자기가 유리할 거라고 말했다.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혜진을 뒤로하고 일어서려는데 입을 쩍 벌리더니 다리를 물어버렸다. 비명을 질렀다. 오른쪽에서 더 잘 들려왔다. 혜진을 질질 끌고 프레셔로 갔다. 지나간 자리엔 물자국과 핏자국이 흐른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영락없는 포식자다.

기계가 켜졌다. 쾅쾅 소리가 났다. 저번에 너트가 빠진 부분이 더 헐거워졌다. 혜진은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발로 걷어차니 다리가 꼬리처럼 흔들린다. 혜진의 손을 잡고 프레셔에 넣어버렸다. 산란 직전의 악어가 마지막 영양분을 채우려고 악어새를 먹어 치우곤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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