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는 고등학교 시절 문제아로 자퇴를 했지만 검정고시로 대학을 마친 후 현재 하버드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옛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평균주의’를 버릴 것을 제안한다.
 
19세기 초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가 천문학 연구법을 인간 연구에 적용해 ‘이상적인 평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즉, 평균이 이상적인(ideal) 것이며 개개인은 오류라는 평균주의(averagarianism)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멈췄어야 할 이 개념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작업장에서 개인을 시스템에 맞추는 ‘표준화’로 발전한다. ‘테일러리즘’으로 유명한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에 의해서다. 결과적으로 창의적 장인으로 추앙받던 ‘근로자’가 ‘자동인형’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는 표준화가 공장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이제 기업, 정부, 학교 등 사회 전반에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인간 개개인을 평균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현실에 던지는 의미가 작지 않다.

특히 평균이 한 개인의 가장 중요한 면모를 알아보지 못하게 가릴 경우엔 ‘허위정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기어 다니기도 전에 걸음마를 뗀다면 올림픽 체조 금메달감이라고 놀라워하다 몇 일 뒤 기어 다니기로 회귀하면 이제는 아이 몸 또는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부모들을 본 적이 있다. 이러한 걱정이 실제로는 아동발달에 대한 평균적 이상에 따른 불필요한 걱정이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아동의 경우 걷기 전에 기어 다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엉덩이를 끌고 다닌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아기는 몸 움직이기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평균주의의 함정에 빠져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소 시스템적 사고를 강조하던 나를 돌아보는 계기였다. (물론 우리는 ‘시스템’은 커녕 여전히 주먹구구식인 게 문제지만 이는 논외로 하자!) 어떤 시스템이든 개개인을 위한 것인데 개개인이 무시되고 있지 않은지 유념할 일이다. 일차원적 사고, 본질주의사고, 규범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평균주의를 극복할 수 있고, 평균에서 이탈을 걱정하기보다는 개개인이 스스로 정한 관점에서 성공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다.

대학교육도 평균주의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세기 개념으로 21세기를 헤쳐갈 순 없는 노릇이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평균주의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학생들도 ‘이상적인 평균의 삶’을 버리고 ‘특별한 삶’을 가꿔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자신의 특별함을 알아 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대학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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