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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5월, 함께 걸어요■우리 대학 5·18민주화운동의 흔적
송원용 수습기자  |  thddnsjdyd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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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3  15: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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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 5·18민주화운동(이하 5·18)의 흔적은 외진 곳에 있지 않다. 통학을 위해 걷던 관현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 앉았던 봉지, 수업을 듣기 위해 지나갔던 사회대 앞 공원에도 5·18의 흔적이 있다. 우리 대학에 의미가 있는 5월을 맞아 대학 내에 있는 5·18의 흔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 관현로, 박관현 열사 혁명정신 계승비

5·18의 흔적은 우리 대학 정문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우리 대학 정문에서 용봉탑까지 뻗은 메타세콰이어길의 이름은 ‘관현로’다. 1980년 우리 대학 총학생회장으로서 학생 운동을 주도했던 박관현 열사(행정·78)를 기리기위해 그의 이름을 붙였다. 박관현 열사는 1980년 5·17 계엄확대 조치로 신군부의 1급 체포 대상이 돼 피난생활을 하다 1982년 4월 체포돼 같은 해 10월 옥중에서 사망했다. 이어 정문에서 법학전문대학원으로 가는 길 사이에는 ‘박관현 열사 혁명정신 계승비’가 있다. 계승비에서는 박관현 열사의 삶을 엿볼 수 있다.

   

▲ 윤상원 열사 공원

사회대 앞 공원에는 기도하는 남성의 흉상과 두 개의 비석이 있다. 이곳은 윤상원 열사(정치외교·71)를 기리기 위해 마련한 ‘윤상원 열사 공원’이다. 윤상원 열사는 5·18 당시 광주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의 식구들과 함께 일반사회투사회보를 발행했다. 시민투쟁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윤상원 열사는 계엄군 진압작전 중 총탄에 맞아 도청에서 사망했다. 비석에는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연설과 생애, 1980년 5월 당시 윤상원 열사의 활동들이 새겨져 있다.

   

▲ 임을 위한 행진

우리 대학 중앙도서관과 제1학생회관 사이에 있는 봉지도 5·18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봉지 가운데에 위치한 ‘임을 위한 행진’ 조형물은 2004년 김대길 교수(미술)가 5·18 당시 항쟁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조형물을 구성하는 네 개의 형상은 각각 학생, 교수, 직원, 시민을 상징하고 전체적으로 사랑과 포용을 갖고 진취적으로 나아가자는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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