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6월 9일 전남대학교 개교기념식장에서 축하 꽃다발을 받고 사진 촬영한 (왼쪽부터) 문교부장관 백낙청, 설립자 이을식 전남지사, 총장 최상채.
전남대학교는 1952년 6월 9일 첫 개교기념식을 거행했다. [전남대역사연구회]에서는 대학의 숨겨진 역사를 정리하면서 첫 개교기념식 사진(호남일보 제공)에서 ‘설립자 이을식’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사립대학도 아닌 우리 국립대학에 설립자가 있다니? 신문사는 왜 이을식이라는 인물을 설립자라고 기록했을까? 이을식은 도대체 누구인가?

1951년 9월, 전남대학교는 광주의대, 광주농대, 목포상대를 국립대로 전환하고 20억에 달하는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부로 국무회의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당시 박철수 전남지사가 전남대학교 설립기성회를 조직했지만 산재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지사직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해 12월 이을식이 전라남도 3대 도지사로 새로 부임했다.

1952년 봄 국립 전남대학교를 설립하자는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었지만, 문교부에서는 전라남도에서 자체적으로 종합대학을 세울만한 기본재산을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전쟁 중인 어려운 시기에 정부의 예산 지원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이을식 지사는 먼저 전남도시제사주식회사의 주식을 기부 받았다.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이 회사는 일본이 패망하면서 모든 주식을 도민들에게 1주씩 나누어 주었는데, 도민
을 설득하여 전남대 설립기금으로 기증받은 것이다. 또한 이 지사는 지역 유림 대표들을 설득하여 향교재단의 농지증권 약 9억 원을 기증받았다.

다음으로 광주의대와 광주 농대, 목포상대의 재산이 도유재산이므로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 전남대설립기성회에 기부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전남 도의회 의원들은 도민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도립대학의 전 재산과 전남도시제사주식회사 주식, 그리고 향교 재산으로 자금을 마련했는데 정부는 국가재산을 얼마나 내놓을 것인지 밝히라고 따졌다.

이 문제가 사흘 동안 논의되자 이 지사는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을 했다. “의원님들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도유재산을 국유재산으로 이관한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고 300만 도민들이 돈을 내어 하나의 민립대학을 세운다고 생각해 만장일치로 이 안건을 가결해 주신다면 앞으로 전남도민의 2세 교육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지사의 감동적인 연설에 도의원들은 만장일치로 가결해주었다. 국립 전남대학교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이을식 지사는 1906년 전북 옥구 출신으로 14살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일본 순사에게 맞아 왼쪽 다리뼈가 세 토막 나는 큰 부상을 입고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았으나, 독립유공자 보상 신청을 거절할 정도로 강직한 성품이었다. 제3대 전남지사 재임 기간 중 국립 전남대학교를 설립하였으며, 2007년 5월 1일 향년 102세로 별세했다.


이 지사는 항상 허름한 삼베옷과 무명옷을 즐겨 입은 청백리의 표상이었다. 도지사 시절에는 삼베옷의 도지사라 하여 ‘마의도백‘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의 민족정신과 청빈한 생활이 도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고 전쟁 중인 어려운 상황 속에도 20억이라는 전남대 설립자금을 확보하여 종합대학의 기틀을 세운 분이니 우리 대학 설립자임이 분명하다.


※ 참고문헌: 『전남대 5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남대학교 60년사』, 가난한 절름발이 도지사 죽헌 이을식 선생 전기 『저는 벼슬을 안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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