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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갑’인가, ‘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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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3  22: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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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원음 그대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들이 있다. 한글, 불고기, 김치, 태권도 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특유의 문화와 관련된 단어들은 번역이 적절치 않아 이렇듯 가급적 원음을 반영한다. 그래서 적어도 앞서 열거한 단어들이 영어사전에 수록될 때에는 가슴 뿌듯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화병, 빨리 빨리, 재벌이란 단어처럼 얼굴이 후끈거리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머잖아 후끈거리다 못해 발개질 일이 닥칠 것 같다. 바로 ‘갑질’이다. 올해 상반기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한 재벌가의 갑질 행태를 외신들이 ‘gapjil’로 표기해 보도하는 것을 보니, 이 단어가 옥스퍼드에 등재되는 것도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2013년에 인터넷을 통해 등장했던 이 신조어는 주로 재벌가나 정치권의 인사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고발할 때나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대한항공 조씨 일가의 땅콩회항부터 물컵 던지기와 폭행, 정치인의 노룩 패스, 최근 엽기적인 행각으로 전격 체포된 양진호 회장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향한 우리들의 치솟는 공분은 하늘을 찜 쪄 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한껏 흥분의 침을 튀겼지만 뭔가 찜찜하다. 이 찜찜함은 무엇인가.

지난 9월부터 <전대신문>에서는 우리 대학 내 갑질문화에 대해 연속 보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호에서는 학부생, 대학원생, 조교, 시간강사들을 대상으로 갑질 사례 제보를 받은 결과가 발표됐다. 개인 심부름, 청소, 운전, 강의 뺏기 등 교수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부터 직원들의 불친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나를 포함해 이들 또한 분명 TV에 대고 흥분의 침 튀기기를 했을 터이다. 남의 눈 속의 티끌은 보여도, 정작 내 눈 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올해 5월,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었다. 3500여 명을 대상으로 갑질에 대한 인식을 묻는 이 조사에서, 응답자 중 95%가 자신을 ‘을’ 또는 ‘병’ 이하로 여기고 있었다. 이중 1064명은 갑질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으며, 174명만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갑질 피해가 일상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숫자 간의 괴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괴리는 우리가 스스로를 ‘을’로 생각하면서 피해를 당한 것만 뼈저리게 기억할 뿐, 자신의 갑질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갑’인가? ‘을’인가? 적어도 갑질과 관련해서는 영원한 가해 집단도, 영원한 피해 집단도 없다. 일상 안에서 누구든지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면 권리행사고, 네가 하면 갑질이다’는 식의 후진 감각으로는, 이런 비인권적이고 비문화적인 상황을 돌파할 수가 없다.

갑질은 어떤 형태이든 크고 작음의 측정도, 경중의 측정도 적용될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깃털처럼 가볍고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당한 자에게는 천근의 무게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갑질은 범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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