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년을 거슬러 진실을 마주하러 가는 길
우리 대학은 5·18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다.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은 정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막았다. ‘계엄해제’와 ‘휴교령 철폐’를 요구하며 항의하자 계엄군은 진압봉을 휘둘렀다. <전대신문>은 5월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바라며 38년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과 같은 위치에서 2018년 5월 전남대 정문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전혜림 수습기자 jhr80501@naver.com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은 우리 대학 정문이었다. 우리 대학 곳곳에는 당시 희생된 학생과 시민들을 기리고 그들의 민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조형물과 공간 등이 조성되어있다.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발원지인 우리 대학 정문의 역사적, 사회적 의의를 기리기 위해 정문 우측에는 ‘5·18기념 소공원(1999년 조성)’이 좌측에는 ‘민주공원(2016년 조성)’이 만들어져있다.

5·18기념 소공원에는 ‘5·18 민중항쟁사적비’와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위한 ‘추모의 벽’ 등이 마련되어 있다. 민주공원에는 민주화운동 기념마당과, 민주의 길, 바람의 정원 등이 있다.

봉지 가운데에는 ‘임을 위한 행진(2004년 설치)’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있다. 백도 앞 잔디밭은 1980년 당시 학생들의 시위집결지로 2000년대 초반까지 학생들 사이에서 ‘5·18 광장’이라고 불렸으나 대학 내 시위가 점차 줄어들면서 현재는 ‘5·18 광장’이라고 불리지 않게 됐다. 

사회대 앞 정원에는 故윤상원 열사(정치외교·71)의 흉상이 있다. 80년 5월 당시 광주 학살의 참상을 알리는 투사회보를 발행하고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숨진 故윤상원 열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웠다. 흉상 옆에는 열사의 사진, 약력,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발표한 마지막 선언문의 일부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김창현(사회·17) 씨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5·18민주화운동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역사 왜곡을 바로 잡고 올바른 역사 전달을 위해 우리 모두가 80년 5월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

박해광 교수(사회)는 “우리 대학은 80년대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했고 가장 많은 열사가 있었던 곳이다.”며 “학생들이 5·18기간만이라도 조형물과 기념관을 찾아 역사를 기억하고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