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은 유난히 뜨거웠다. 우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국가적 차원의 대형 이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차가운 겨울을 예기치 않은 후끈함으로 보냈다.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문을 연 2월은, 컬링 ‘킴팀’의 영웅서사와 봅슬레이의 아이언맨에 열광하면서 우리들은 잠깐 행복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북인사들의 방남과 남북 단일팀의 구성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가능성과 통일을 위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어 있는 참담한 상황에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다시 우리를 절망케 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슴 벌렁벌렁한 일들이 연이어 쏟아지는 와중에, 경악스런 이슈가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바로 ‘미투(Metoo)’이다.

한 여성 검사의 성추행 경험에 대한 고백이 미디어를 통해 발신되었던 때만 해도, 늘 그래왔듯이 그저 그런 사건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다. 애초에 검찰조직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갖고 있던 국민들의 마음에 밉상 이미지 하나 정도만 덧붙여지고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한 여성의 용기는 수많은 피해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꺼이 국민들은 ‘위드유(Withyou)’로 이 용기에 응답하고 있는 중이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혹자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표현했다. 터질 것이 터진 것이다. 시인, 배우, 교수, 인간문화재, 감독,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가해자들의 명단은 도저히 낯부끄러워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명인이기에 ‘공공의 적’ 명단에 올라 있을 뿐, 솔직히 말해 성폭력은 매일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어리다는, 후배라는, 아랫사람이라는, 힘이 약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른에게, 선배에게, 상사에게, 힘이 강한 자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1991년 1월. 한 여성이 살인범으로 체포되었다. 9살에 이웃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그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다가 20년이 지난 뒤에 결국 가해자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스런 시간을 끝낸 것이다. 그때 그 여성이 최후변론에서 발언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는 표현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고, 이 사건은 ‘성폭력특별법’을 제정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 것 같다.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재, 이렇듯 온 나라가 진동하듯 일어나고 있는 ‘미투’는 그동안 우리가 인간의 시간이 아닌, ‘짐승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가해자만이 아닌, 이런 일상적 폭력을 허용하고 묵인하고 방조한 한국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미투 운동’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보다 성숙한 사회로 성장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허술한 성윤리적 감각을 그대로 묵인할 때,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미넥스트(Menex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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