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혼돈과 모순은 사적 가치 몰입과 정부의 과도한 통제에서 비롯
유능한 민주시민 배양과 잘 훈련된 노동인력 양성을 위한 관심과 투자에 집중
 
▲ 삽화=허진서 객원기자
 현대의 대학교육은 개인이 중시하는 사적 가치와 국가가 유지해야만 하는 공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모순적이면서도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다. 대학교육의 목적이 변한 것이다. 중세 및 근대 초기의 대학교육 목적이 소수의 귀족 자제와 지배계층 및 국가 관료를 대상으로 한 엘리트 양성에 있었다면, 현대의 대학교육 목적은 대중의 관심과 이익 그리고 국가의 공적 가치 실현을 위한 의지를 반영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규정하기 힘들다.


한국은 198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령인구 중 15%미만만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엘리트 대학교육체제’였다면, 2016년 현재 취학 적령 인구(23-34세) 중 대학 취학률은 65.4%,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69.8%로 ‘보통 대학교육체제’로 전환되었다(KEDI, 2017).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2010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이 75.4%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다소 감소추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최고다(OECD, 2016). 세계적 차원에서도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70년 대학재학생은 10.09%였으나 2015년에는 35.69%로 지난 45년 동안 3.5배 이상 늘어났다(World Bank, 2017).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의 급속한 증가는 대학교육의 목적 구성을 두고 이해당사자들의 다양한 관심과 높은 기대가 서로 상충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개인 대학 기업 지역사회 국가 국제기구의 대학교육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해당사자 중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개인과 국가의 입장에서 대학교육의 목적을 고찰한다. 이 작업은 이해당사자들 간에 오래 동안 뜨거운 쟁점이 되어 그 해법 마련에 곤란을 겪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냉정하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대학교육을 받는 핵심 목적은 중산층 진입에 필요한 자격을 획득하는 데 있다. 대학교육은 사적 가치로서 개인에게 좋은 직업을 얻거나 수입을 확대하여 사회적 신분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학교육이 지닌 세속적 가치로서 개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동’의 수단이다. 그러나 대학교육에 대한 개인의 관심과 기대는 세속적인 사적가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등교육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학습에 대한 개인의 관심과 의지를 반영한다. 다수의 개인들은 높은 수준의 학습을 통해 자기 스스로가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특히 사회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개인의 가치와 의지를 반영한다. 이런 가치는 공적 가치로서 자유 상상력 민주주의 진리 인권 평화 아름다움 등을 포함한다. 2천 5백 여 년에 이르는 대학의 역사는 이런 공적 가치의 추구가 대학의 존재이유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개인에게 대학교육은 사적 가치를 충족하는 ‘사회적 이동’ 수단이자 수준 높은 학습을 통해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최고의 학습기회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게 대학교육은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핵심 수단이다. 국가는 대학교육을 통해 다수의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적 동기와 가치를 공적으로 전환하여 국가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활용해야만 한다. 여기서 사회 발전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요구를 충족시키며, 더 평화롭고 공평하며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구성원들 간의 공존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사회발전을 위해 국가는 대학교육을 통해 더 좋은 국가 공동체 구성과 유지를 위해 민주 인권 평화 자유 진리 아름다움 등의 공적 가치를 배양하여 유능한 시민을 양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개인들에게 대학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대학교육의 내용과 결과가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민주적 형평성’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대학이 ‘교양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다.
국가가 중시하는 경제성장은 재화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경제 규모를 키우고 결과적으로 국민 생활을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는 대학교육을 통해 유능한 노동인력을 배양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식으로 ‘사회적 효용성’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특히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진보가 경제성장에 핵심 수단이라 여기고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여기서 대학교육은 시장의 요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는 시장의 요구와 산업계의 요구를 고려하여 미래 직업에 필수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대학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운영한다. 현대의 대학교육이 사회의 주요 직업특성을 반영하는 식으로 분화되어 있고 갈수록 ‘직업교육’을 중시하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특별한 직업 분야를 중심으로 실용적인 교육을 제공하여 적절하게 훈련받은 유능한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만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표현으로는 ‘인적 자본’의 논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대학교육은 미래 노동자의 생산성을 신장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의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논리다. 경제성장을 위한 대학교육의 사회적 효용성 강조 또한 대학교육이 지닌 공적 가치를 반영한다. 국가가 대학교육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핵심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적으로 확인된 대학교육 목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대학교육을 통한 사회발전의 경우, 한국의 대학교육은 개인들에게 공평한 접근 기회와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지 않는다. 서열화된 대학체제가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기능으로 전락하면서 대학교육을 통한 공적 가치 실현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의 경우, 대학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인력 양성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육을 통해 학습한 결과가 개인 및 사회가 원하는 역량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취업 기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의 경우, 개인들은 대학교육의 결과가 자신의 신분 유지 및 상승에 반영되지 않고, 많은 경우, 특정 계층의 재생산 도구로 전락했다고 믿는다.
한국의 대학교육이 처한 현재 상황은 대학교육의 목적을 두고 서로 대립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입장과 현실에서 드러나는 모순된 결과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모순은 지금까지의 대학교육개혁 논의가 다분히 추상적이며 현실 유지적 담론에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대학교육의 목적 구성에 들어가 있는 공적 가치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특정 집단의 관심과 이익만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의 대학교육개혁논의는 행정 효율성 중심으로 대학의 지배 구조를 바꾸는 것과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개인과 국가가 기대하는 대학교육 목적 실현에 부분적이고 기능적 담론에 불과하다. 핵심 이유는 기존 담론 구성이 사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충족하는 식으로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 한국의 대학교육이 처한 모순과 혼동은 기술적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며, 과학적 탐구를 통해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단위 대학의 지배구조를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다. 대학교육의 목적 달성은,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학교육의 목적 구성에서 공적 가치의 실현을 사적가치보다 우선한다면, 현재 대학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논문 편수 중심의 교수 업적 평가와 취업률 중심의 대학평가, 행정 효율성 중심의 지배구조개혁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관심 밖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과 국가가 상상하는 좋은 공동체, 좋은 대학의 건설은 개인의 사적 가치보다는 공동체 기반의 공적 가치를 존중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 염민호 교수(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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