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등굣길과 점심시간을 함께하는 전대방송의 첫 곡을 들어 본 적 있는가? 아침 방송과 점심 방송을 여는 경쾌한 노래가 바로 “교가”와 “용봉가”다. <전대신문>이 개교 65주년을 맞아 우리 대학의 “교가”와 “용봉가”에 대해 알아봤다.
 
▲ 우리 대학 교가 악보
우리 모두 역사의 창조자, “교가”
1952년 6월 9일, 우리 대학은 개교식을 마치고 학사 운영에 관한 기본 틀을 편성했다. 같은 해 11월 15일에는 학장회의의 결의를 거쳐 공식적으로 교가를 제정했다. 교가 작사는 당시 우리 대학 창립에 기여한 노산 이은상이 맡았고, 작곡은 현석 현제명이 맡았다.

작사가 노산 이은상은 시조 작가로서 많은 문학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은상의 대표 작품으로는 ‘새타령’, ‘조선의 꽃’ 등이 있다. 작곡가 현석 현제명은 ‘고향 생각’, ‘산들 바람’, ‘그 집 앞’, ‘나물 캐는 처녀’ 등을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나 현제명은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올라 한때 논란이 된 적 있다.

우리 대학 교가는 “조국의 앞날을 이끌어 나갈 역사의 창조자 여기에 있다.”로 끝맺는다. 작사가 노산 이은상은 여러 학교의 교가를 작사했지만 ‘역사의 창조자’라는 말을 우리 대학 교가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훗날 전했다. 이는 마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듯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전개 과정에서 앞장 서 민주화를 외친 우리 대학 선배들을 떠올리게 한다.
 
▲ 1967년 6월 9일 전대신문 291호에 처음으로 공개된 용봉가 악보
피 끓는 청춘들 다시 모여 외치자, “용봉가”
“여기 젊음의 찬가가 있다. 이천전대 건아가 명랑하게 힘차게 부르는 전남대학생의 노래에 지성과 낭만의 숨결이 흐르는 것이다.” 사진 속 악보에 함께 실린 문구다. 용봉가는 1967년 6월 9일, 개교 15주년을 맞아 제정됐다.

교가가 학교의 교육 정신, 이상, 특성 따위를 담고 있는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인 반면 용봉가는 훨씬 진취적으로 초기에는 응원가로 불렸다. 교내 분위기를 하나로 만들고 15주년을 기념하는 의도로 당시 <전대신문>이 주관했으며 가사를 모집했으나 당선작은 없었다. 이에 ‘전남대학생의 노래 가사 제정 위원회’에서 당시 동문 시인이며 사범대학에 재직 중이던 정재완 교수에게 가사를 부탁했으며 작곡은 작곡가 이희목에게 부탁했다.

작곡을 맡은 이희목은 월남 주월 한국군 방송국, 기독교 중앙방송국 등에서 활동했으며 가요와 로고송 등 다수의 곡을 만들었다. 9곡의 군가를 만든 대표적인 군가 작곡가인 이희목이 만든 용봉가의 선율은 활기차고 당당한 우리 대학 학생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있다.

용봉가는 처음에 ‘전남대생의 노래’로 불렸으며 후에 ‘용봉의 노래’로 바뀌었고, 다시 용봉가로 변경돼 현재는 ‘용봉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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