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허진서 객원기자
대학 정신의 회복
대학 제도는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꾸어 온 제도 가운데 하나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정체성과 성격,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역할 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다른 영역에서도 흔히 그렇듯이 한국 대학의 많은 문제점들 역시 세계사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압축 성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근대적 의미의 대학이 유럽에서는 12세기에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올해 우리 대학은 개교 65주년을 맞는다. 중세 말 근대 초에 출범한 유럽의 대학들이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학문 공동체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를 실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고 한다면, 현대 한국 대학들도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으로부터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를 떠안고 있다. ‘학생과 교수로 이루어진 학문 공동체’를 뜻하는 우니베르시타스는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을 말하는 것이지 시설이나 건물, 장소나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우니베르시타스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대학의 요체는 훌륭한 시설이 아니라 대학 정신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대학의 역할
우리 전남대학교 신문방송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대학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로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35.5%)와 “대학에 가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서”(33.5%)가 꼽혔다. 설문조사의 항목들이 잘 설계되었는지를 문제 삼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예견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을 평가하는 유력 지표 가운데 하나로 ‘취업률’을 들이대는 것은 이제 당연시 되는 것 같다. 대학의 역할로 꼭 하나만을 들 수는 없고, 대학은 실로 여러 가지 목표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것이 더 기본적이요 우선적인가 하는 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대학을 오로지 취업 준비 기관으로 여기는 것은 크게 빗나간 것이다. 충실한 대학 교육의 결과로 학생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될 수는 있겠으나, 대학 교육의 내용과 우선적 목표를 직업 훈련, 취업에 맞출 수는 없다. 그런데 설문조사의 다른 질문인 “대학의 기본적 역할”에 대해서 학생들은 “학문 연구 및 진리 탐구”(31.8%), “개인의 자아실현 기회 제공”(29.5%), “취업 역량 강화”(28.5%)를 꼽았다. 세 항목이 비슷한 비중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한편으로는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 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임무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배척적이지 않다는 것을 학생들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대학 민주주의의 가늠자 총장 직선제
가파른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할 1979년 부마 항쟁,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최근의 촛불 혁명에 주목해 보자. 얼마 전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이 네 가지의 의미를 되새기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특히 올해는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된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이 국민에게 항복하고 그 결과 쟁취된 것이 ‘대통령 직선제’였다. 더 이상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아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열망이 대학가에서는 ‘국립대 총장 직선제’ 요구로 이어졌다. 임명제를 대체한 직선제는 이후 대학 민주주의의 상징 코드가 되었다. 『전남대학교 60년사』는 우리 전남대학교가 전국에서 최초로 총장 직선제를 성취했노라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는 대학 총장을 꼭 직선으로 뽑아야 하느냐고, 대학이 총장 직선제에 목매달아야 하냐고 묻기도 한다. 역사적 맥락을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는 경우에나 할 소리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임기 내내 국립대 선진화 방안이랍시고 국립대 법인화, 총장 직선제 폐지, 성과급적 연봉제 등을 밀어붙이더니 서울대가 법인이 되고 난 뒤에는 유독 직선제 폐지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뒤이어 등장한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2012년 여름과 2016년 여름 전남대학교는 선배들이 쌓아올린 대학 민주주의의 귀한 성과를 허물어뜨리고 말았다. 다수 구성원이 직선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2012년 물러나는 총장이 직선제 폐지를 내용으로 한 학칙 개정안을 발의하고, 총장직무대리가 공포했다. 정권의 압박에 굴복하면서 “역린을 거스리는 결단을 내리는 아픔을 이해해 달라”는 공허한 수사를 남겼다. 4년 뒤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었다. 역시 임기 만료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총장이 그 동안 이미 여러 차례 여론 조사에서 구성원들이 압도적으로 직선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또다시 여론 조사를 제안했고, 이번에는 근소한 차로 직선제를 그만 두게 되었다. 교수회 회장의 단식 투쟁, 교수들의 피켓 시위, 학생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 본부는 구성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복잡하기 짝없는 ‘직선제를 가미한 간선제’를 택함으로써 6월 항쟁을 통한 민주주의 유산을 후퇴시켰다. 

물론 총장 직선제가 유일무이하고 그 어떤 비판도 허락하지 않으며 최종적이고도 개폐(改廢) 불가능의 제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학은 구성원이 합의하는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해야 한다. 교육부 강박에 굴복해서 직선제를 폐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직선제에 문제가 있다면 대학 구성원들이 의견을 모아 스스로 고쳐 나가면 될 일이다. 도대체 교육부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대학을 장악해서 길들이고 좌지우지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지역의 대표 사립대학 조선대도 복잡한 사정 속에서도 직선제만은 유지하고, 국정농단 사태와 결부된 학사비리로 총장과 교수 다수가 구속된 이화여대가 개교 이래 최초로 교수, 학생, 직원, 동문이 직선으로 새 총장을 선출하여 위기를 타개한다고 하지 않는가? 전남대의 역주행은 두고두고 비판 받을 것이다. 다행히 막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대학 서열화 해소’, ‘국립대 네트워크’ 등 바람직한 대학 정책을 예고하고 있고, 이런 연장선에서 볼 때 총장 선출에 있어서도 직선제를 포함한 개별 대학의 의사를 존중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다시금 직선제 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교수 사회의 대오각성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 우뚝 선 동상은 프라하대학 총장 얀 후스(Jan Hus)이다. 총장 시절 그는 당시 교회 권력에 맞서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강의하도록 했다. 그는 화형 당했고 지금도 정신적으로는 프라하대학을 대표하고 존경 받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걸핏하면 재임 중의 일로 구속되고, 압수 수색 당하고, 자살하는 것이 한국의 대학 총장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이들이 거의 다 전직 교수였다. 이렇게까지 교수 사회가 희화화 되어서는 안 된다. 교수 경력이 있으며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바이체커(Richard Weizsacker)가 취임하면서 기자들에게 ‘대통령 각하’(Herr Prasident)가 아니라 ‘교수님’(Herr Professor)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는 독일 사회에서 교수직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입신양명에 눈 멀고, 연구 부정, 성희롱, 연구비 비리로 뉴스를 도배해서는 제대로 교육이 될 리 없고, 대학이 존중 받을 리 없다. 폴리페서(polifessor)는 나라도 망치고 대학도 망친다. 브로커 교수(brofessor)라는 말도 생겨났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 방식에 대한 전면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 전망대로서의 대학
대학이 오로지 현재의 필요성에만 매달려서는 그 사명을 다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학은 한 사회와 시대의 미래 가치를 기획하고 창출해야 한다는 임무를 떠맡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대학 정신을 지켜 나가고 건강한 학문 생태계를 이루어야 한다. 대학은 다시 기본에 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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