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우리 대학은 5·18 민주화운동의 발원지로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5·18에 삶과 꿈을 바친 우리 대학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윤상원 열사(정치외교·71)
윤상원 열사
윤상원(본명 윤개원) 열사(정치외교·71)는 화합과 평화가 공존하는 공동체 세상을 꿈꿨다. 광주지역 최초의 노동야학 ‘들불야학’의 교사로 활동했으며 민주화운동 당시 각종 선언문의 편집·제작·배포를 주도하는 등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한다. 80년 5월 27일 그는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말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운명했다. 윤상원 열사는 영화 ‘화려한 휴가’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 윤한봉 열사(축산·71)

윤한봉 열사
윤한봉 열사(축산·71)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주모자로 수배되어 미국으로 밀항했다. 그는 외국에서도 지속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 1993년, 13년이 흘러서야 5·18 수배자 중 마지막으로 수배가 해제되었다. 이후에도 5·18정신 계승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던 그는 2007년 6월 지병으로 운명했다. 한편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여 우리 대학 재학 중에 제적된 바 있다. 이에 지난 2월 윤한봉 열사에게 우리 대학 명예 학사 학위가 수여됐다.
 
▲ 박관현 열사(행정·78)

박관현 열사
박관현 열사(행정·78)는 80년도 당시 총학생회장이다. 그는 (구)전남도청 앞에서 “우리가 횃불대행진을 하는 것은 이 땅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게 하고 민족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다”고 말하는 등 민주화를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노력을 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전두환 처단, 광주 진상 규명 등을 외치며 50여 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옥사했다.
 
▲ 박승희 열사(식품영양·90)

박승희 열사
박승희 열사(식품영양·90)는 우리 대학 도서관 앞 규탄집회에서 “2만 학우 단결투쟁! 미국반대!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했다. 당시는 1991년 4월 29일. <용봉>교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사회문제 해결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본인의 서랍에 있는 코스모스 씨앗을 학우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심어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는 유언에 따라 2008년 제1학생회관에서 공대7호관으로 가는 길목에 승희꽃밭이 조성됐다.

※지면사정상 일부 민주화 열사들만 소개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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