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많이, 정말 많이 망설였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지금도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나의 대학 생활 7년(군생활 포함)이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만한 시간이었던가? 졸업 후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지금 졸업의 문턱을 막 넘은, 새 출발이라고 하기엔 뭔가 꺼림칙한 마음에 시달리고 있는, 그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2011년 겨울, 졸업을 생각하던 즈음에 자연히 깨달은 게 있다. '학생이란 신분이 알게, 모르게 큰 보호망이 돼 줬구나.' 학점을 꽉 채웠다는 희열은 얼마 못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소속돼 있던 곳에서 벗어나야 하다니. 난 아직 다음 소속될 곳(취직)을 찾지도 못했는데….'

결국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일부러 졸업논문을 쓰지 않았고, 졸업을 미뤘다. 이후 몇 차례 썼던 이력서는 매번 되돌아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론 생각의 어깨엔 한가득 짐이 실려 있었지만, 마음이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에 앉아 있는 시간은 더디게 지나갔고, 술잔을 앞에 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두려움의 크기는 더 커졌는데, 이뤄놓은 건 없었다.

하지만 더는 졸업을 미룰 수 없었다. 소속될 곳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소속돼 있던 곳을 떠났다. 졸업식 날, 나는 멀끔히 차려 입은 사진과 함께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남겼다. "진짜 백수로 진입."

돌이켜보면, 생애 처음 무소속을 경험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이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며, 재수 없이 곧장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직후 '무소속'이란 첫 경험 앞에서, 나는 참 외로우면서도 많이 조급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정치부 기자인데, 무소속 국회의원들의 심정을 듣다보면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
혹시 당신이 이와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면, 사실 나는 별로 해줄 말이 없다. '내가 다 겪어봐서 아는데'와 같은 어느 대통령의 말도, '이 또한 지나갑니다'와 같은 어느 시인의 말도, '아프니까 청춘입니다'와 같은 어느 교수의 말도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앞에 쓴 몇 문장을 통해 '당신의 그 심정, 공감합니다'라는 암시를 남길 수밖에….

다만 한 가지 반성할 게 있다. 첫 문단에 썼던 '귀감'이라는 말, 그 말을 거둬들여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너무 쉽게 몇 가지 꽃길을 정해두고, 그 길을 귀감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란 말처럼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 그 귀감이란 말인 것 같다. 그렇게 천편일률적이고 소수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귀감이라면, 당신은 누군가의 귀감이 될 필요도, 귀감이 되고자 노력할 필요도 없다.

소수만 귀감이라고 치켜세워지는 졸업식이 아닌, 우리 모두가 그 자체로 인정받는 졸업식이 되길 바란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야 귀감이 되지 못하는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생긴다.

당신은 누군가의 귀감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존재할 필요도 없다.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소중하다.

▲ 소중한(철학·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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