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에 치러지던 현상공모전이 올해는 가을로 옳겨 왔다. 두 계절을 더 지나온 시간 동안 응모작품들의 수준도 농익었는지 훌쩍 성숙해진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과거의 응모작에 으레 보이던 자기만의 감정에 매몰된 연가풍의 시나 치기어린 형태시의 흉내 내기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예년보다 거의 갑절에 가까운 135편의 응모작을 심사하면서도 즐겁고 뿌듯한 마음으로 읽어갈 수 있었다. 예심에서는 여러 차례의 반복 읽기를 거쳐 <지중해빈혈>, <누구나 마음속엔 고양이가 산다>, <자물쇠>, <세계과자전문점>, <예초기> 등 다섯 응모자의 작품을 본선 심사 대상으로 골랐다.

다섯 작품을 앞에 놓고 또 몇 번의 비교 읽기를 한 후 비교적 망설이지 않고 <지중해빈혈>을 당선작으로 선하였다. <지중해빈혈>은 지중해 연안에 병인을 둔 난치성 유전병을 소재로 삼아 그 유래와 병증, 또 그를 견디며 살아야하는 삶의 고통을 시적 상상력을 통해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질병과 인체에 대한 자연과학적 시선과 관찰을 넘어 인간 삶과 역사성을 응시하는 시상의 집중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뜩해지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어쩌면 풍기는/ 이 비릿한 바다냄새”에서처럼 이를 언어로 풀어내는 감각과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형상적 의미 역시 칭찬할만한 수준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하기를 바란다.

가작으로 선한 <세계과자전문점>은 당선작과는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한편으로는 지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대단히 참신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솜씨를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산문시로서의 시상이 흐트러져 있어 조금은 산만한 느낌을 준 것이 흠이었다.
 
이 외에 본선에 오른 다른 세 작품에서도 나름대로의 시적 역량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부분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이미지가 과다하게 쓰이고 있거나, 피상적인 인생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거나,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들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실망하지 말고 시의 길로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기를 바란다. 응모 학생 모두에게 격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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