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최윤정 일러스트레이터

우리의 가족력에선 바다냄새가 난다
파란 눈의 조상이 유리병 속에 족보를 넣고
마지막 조난신호를 흘려보낸 곳 어지러움은
분명 그곳에서 퍼졌겠지 너울처럼
적도를 넘고 폭풍을 삼킨 유리병 속
글씨들이 수세기를 표류하며 제 속을
박박 긁어내는 소리 아득한 전설들을
모조리 게워내는 목소리, 이름은 없고 몸짓만 남은
병 속, 당신이 물 위에서 앓던 병(病)

언젠가 까만 눈의 여자가 유리병을 발견하자
세상의 모든 현기증들이 여자의 몸으로 쏟아져
흔들기 시작한다 배와 가슴이 노랗게 부풀고
바닷물을 모조리 뱉어내고 싶은 헛구역질이
한 점 태동을 깊은 코발트블루로 적신다
어지러울 때마다 붙잡은 탯줄이 닻줄처럼
지중해까지 내려 우리의 어지러움은 이렇게
단단히 유전되는 법이구나 멀미 같은 아홉 달 반
우리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증명하러
땅멀미하며 처음으로 발 디딘다

우리의 병력(病歷)이 갖는 힘
어지러움의 연대로 세상을 휘어보고파
바람 빠진 창백한 풍선들과
거리마다 흐느적거리는 스카이댄서
바람만 불어도 어지러운 들꽃들
바이킹과 청룡열차가 지나간 자리 몸 위에
피어나는 열꽃들 흐르는 식은땀이
손을 쥐는 아찔한 고백들
눈과 눈이 부딪치자 꽃을 떠나는
나비들 여린 날갯짓이 일으키는 불꽃
우리 입술이 닿기도 전에
아뜩해지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어쩌면 풍기는
이 비릿한  바다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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