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사자성어. 모두들 한번쯤은 들어보았던 익숙한 사자성어입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는 뜻이죠. 사실 우리는 지금껏 호가호위하는 사람을 수도 없이 지켜봤고 또 심판해왔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면 무언가 달라 보입니다.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권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닌, 호랑이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했기 때문이죠.
 
과학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주문을깨다』에서는 ‘좀비 개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창형흡충이라는 뇌기생충은 초식동물인 소, 양의 배에 들어가 번식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소나 양의 몸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개미를 조종합니다. 이른바 좀비 개미를 만드는 것이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생충은 개미의 뇌에 들어가 개미가 풀잎에 올라가도록 조종합니다. 풀잎에 오른 개미들은 풀을 뜯어먹는 소나 양에게 자연스레 잡아먹히게 되고, 그 때 기생충은 그들의 배로 들어가게 되죠.
 
과연 이 행위의 주체는 누구이고 누구를 위해 이루어진 것일까요? 개미가 자신을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뇌를 지배하는 기생충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미를 사용한 것이죠. 그들은 뱃속에서 깨어나 자손을 낳고 배설물과 함께 밖으로 나옵니다. 기생충은 철저히 자신의 번식을 위해 개미를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숙주가 기생생물을 위해 행동까지 바꾸는, 이러한 모습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확장된 표현명’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이는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개체의 특정 형태와 행동을 발현하고, 유전자 복제를 위해 다른 종에게 영향을 미치고 행동을 조종한다.’는 개념입니다. 숙주가 된 개체는 기생자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한 몸 바쳐 충성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기생충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것이죠. 결국꼭두각시가 되어 자신의 생을 마감합니다.
 
2015년 12월,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바로 “혼용무도”(昏庸無道)였습니다. 어리석고 용렬한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2015년을 넘어 2016년까지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6년 말을 지나는 지금, 우리는 어리석은 군주 한 명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군주가 누군가의 조종을 받았다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겪고 있는 점이죠. 동물계에서 간혹 보이는 ‘확장된 표현’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현 시국. 내년의 사자성어는 근본을 바로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의미의 ‘정본청원’이기를 바랍니다.
 이 주 현 (생물과학·생명기술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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