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청년들, ‘할 수 있다’는 자존감 회복해야

 
43년 동안 40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 지나온 세월이 무색하게도 박범신의 문학은 늙지 않았다. 이미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지만 그의 작품만은 세지 않는 모양이다. 박범신은 그의 소설을 닮았다. 영원한 ‘청년 작가’라 불리는 박 작가, 그가 말하는 ‘청춘’을 듣기 위해 그의 고향 ‘논산’으로 향했다. 밀린 청탁과 원고들, 의미 없는 회의와 서운한 맘들을 제쳐두고 어느새 나는 광주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의 집은 소설 ‘소금’에 나오는 배롱나무가 뜨거운 햇살을 견디고 있었으며 앞뜰에서는 곧 은교가 달려 나올 것 같았다. 
 
가난, 한 끼의 밥조차 감동으로 다가왔던 시절
“6·25 전쟁 직후에 어린 시절을 보냈잖아. 그리고 유신정권과 더 거대한 자본주의의 폭력, 얼마나 절망스러운 삶이겠니. 시시각각 상처로 다가왔어.” 60년대의 대한민국은 절대빈곤의 시대다. 그 시절, 하루에 한 끼 정도 거르는 것은 일상이었고 밥 한 그릇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가난은 그에게 불행이 아니라 ‘감동’이다. 
 
진짜 불행은 그 다음부터다. 가난을 이겨내자는 ‘개발 이데올로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고유한 꿈은 유린당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돈’을 위해 진격했다. 그들은 ‘돈을 벌라는 사회적 명령’, ‘정치적으로 독자적 선택을 해선 안 된다는 명령’, ‘반공 명령’에 둘러싸여 살았다. 
 
우리 사회의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명령’덕분에 알량한 경제적 평안은 얻었지만 더 위험한 ‘자본’이라는 독재자가 등장했다. “젊은이들은 완전한 ‘소비 네트워크’에 포위됐어. 옛날보다 더 힘들지는 않겠지만 더 쓸쓸한 시대라고 생각해. 소비를 등지고는 단독자로서 선택을 할 수 없거든.”
 
가난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돈을 좇기보다는 자기 정체성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상대적 가난에 신경 쓰지 말라”며 “‘할 수 있다’는 자존감 회복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청년들이 ‘소비’나 ‘돈’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부대끼며 살았던 가난한 어린 시절을 지나 유신정권보다 자본주의의 더 단단한 폭력성을 느낀 박 작가는 비로소 불행을 느낀다. 그는 세상과 소통이 불가능한 고립감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세상은 미쳤으며 문학은 어둠, 절망, 불화를 이겨내는 유일한 길이였단다. 결국엔 작가란 그런 것들에 반항하고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겠지.” 
 
그리하여 ‘예민한 반항자’ 박범신은 1973년, 소설 <여름의 잔해>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박범신은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한민국을 먹어버린 ‘괴물’
‘정치적 독재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면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혹독한 자본의 독재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소설 <소금>에 나오는 대목이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지만 소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아내와 딸 셋을 버리고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 외에도 아들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의 이야기인 소설 <비지니스>, 거대한 자본주의로 인해 실제로 자신의 내재된 폭력성을 발휘한 한 남자의 이야기인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모두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자본주의의 폭력이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또 비정상적으로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참사, 세월호 참사, 구의역 사고까지, 자본주의 폭력에 희생된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 돈의 네트워크에 끼여서 욕심을 부리는 자들이 아이들을 물에 수장 시킨 거야.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오늘날의 사건 사고 대부분이 자본주의의 결과지. 사건을 따로따로 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해야 해. 우리 모두 자본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는 결과겠지.”
 
대학교육도 자본주의 앞에선 어쩔 수 없다. 박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 그리고 중·고등학교 문학교사, 대학교수도 역임했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교육자의 생을 살았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지식이 아닌 인격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은 ‘생산성’과 ‘효용성’에 사로 잡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의 대학이 직업인을 키우는 곳이지 사람을 키우는 곳의 성격은 실종된 상태잖아. 대학도 자본에 먹혀버렸지. 유능한 사회인 혹은 직업인을 기르는 곳이 되어버렸어.”
 
문학을 통해 어떻게 감동을 제자들에게 전해야하는지는 교육자로서 과제였다. 적어도 문학교육만은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작가에게 교육은 제자로 하여금 정서적 변화를 유도하는 일이다. 
 
고산자, 그는 갈망한다 
이룰 수 없는 꿈. 그것은 ‘갈망’이다. 9월 3일 강우석 감독, 차승원 주연의 영화로 개봉하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박범신 소설 <고산자>가 원작이다. 지도꾼 김정호는 불가능한 꿈을 꿨다. 오늘날의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꿈꾼 사람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신분제를 넘어서야 한다며 실학을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중인 출신인 고산자의 출생연도조차 기록하지 않았어. 엘리트들의 이중성이지. 지금 구조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고 생각해.”
 
실존인물을 토대로 쓰는 소설은 기본적인 사실을 바꿀 수 없는 제한이 있다. 그 당시의 ‘사실’을 현재적 관점에서 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가치가 없다면 소설화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지도를 소유해 편리한 생활을 바랐지만 그것은 ‘갈망’이었다. 과연 김정호가 바랐던 민주화는 오늘날 이뤄졌을까.
 
소설 <은교>는 불멸을 원한다, 죽음에 가까운 노 시인 ‘이적요’는 영원한 젊음을 욕망하다. “내 머리에 죽음이 가득해. 인간은 시한부 인생이야. 죽음은 늘 마음속에 씨앗처럼 있어.” 모든 이에게 죽음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랑은 진정한 순애보가 된다. 노부부의 사랑을 담은 소설 <당신>은 그렇게 탄생했다. 
 
자본주의의 폭력을 온 무게로 견디고 있다
“아픔을 이기니깐 청춘이라 생각해. 너희들을 위로하고 싶은 맘은 없어. 젊잖아. 우리 ‘아프니깐 청춘이다’고 말하지 말자. 아픔을 이기니깐 청춘이다.”
 
그렇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말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밥도 그때처럼은 굶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얻은 만큼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폭력을 온 무게로 견디고 있다. 박 작가는 그럴수록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패배주의적이고 체념주의적인 생각은 위험해. 나는 소설을 통해서 말할 테니 자네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말해보는 것은 어때?”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