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습자 9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온전한 인양만이 문제해결 열쇠”
왼쪽부터 박은미, 허흥환 씨
 
다시, 봄이다. 2014년 4월과 2016년 4월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달라질 것 없는 고통 속에서 시간은 어느새 2년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고통이고, 아픈 몸이 오히려 정상”이라 말하며,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딸 허다윤 양을 기다리는 박은미(46), 허흥환 씨(52)를 만났다.
 
“우리에게 700일이니, 2주기니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2014년 4월 16일을 살고 있습니다. 그 끔찍했던 날이 2년째 반복되고 있어요. 2년 전 했던 말, ‘우리 딸을 찾아달라’ 이 말만 2년 째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답답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요.”
  
“돌아오기만…” 너무나 외로운 기다림
예상치 못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박 씨는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보며 고통스러웠지만 나한테 이런 참사가 닥치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막상 겪고 보니 아무한테나 닥치는 일이구나 싶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은 무너졌다.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든 일이 됐다. 참사 한 달 뒤 대부분의 가족들이 진도를 떠났을 때도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고통스런 날들은 계속됐다. 세월호 수색 중단 이후에는 거리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특별법에도 특조위에도 ‘인양’이 명시되지 않아 가족들이 직접 나서야 했던 것. 이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세월호 인양 관심 촉구를 위해 직접 거리로 나서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허 씨는 “길거리에 딸 사진 들고 서 있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찾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다. “특별법에도 특조위에도 명문화된 인양이 없다. 인양 결정도 국민 여러분들의 관심 덕에 할 수 있었다”며 “여러분이 함께 관심 가져주시고 바로 봐 달라”고 전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바람은 딱 하나다. 미수습자가 ‘돌아오기만’ 바라며 오늘도 그들은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미수습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남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의 가중이다. “제발 아이를 찾아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이들.
 
이들은 단어 하나에도 마음이 무너진다. 박 씨는 “실종자는 어디 있는지 모를 때 쓰는 말이다. 단어 하나에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수색 종료 후 미수습자 가족들과 해양수산부에 가서 직접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미수습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미수습자가 소수이다 보니다수의 의견 결정 방향에 이끌려 갈 때가 많다”며 “미수습자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입장 차이를 고려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한다”고 설명했다. 
 
허 씨는 “단순히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며 “생명 하나하나에 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과정이지만 함께 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계속 관심 가져주시고 지켜봐 달라. 그래야만이 온전히 해결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필수적 과제 ‘세월호 인양’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인양은 필수적이다. 허 씨는 “선체를 건져 올려야만 미수습자를 찾을 수 있고 전문가들의 면밀한 조사를 통해 정확한 침몰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가 ‘선체 없이 판단 불가’라는 입장을 내놓는 마당에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도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인양은 무엇일까? “유실 없는, 온전한, 안전한 인양”이다. 박 씨는 “미수습자를 찾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유실 없는 선체의 온전한 인양이어야 하며, 인양을 담당하는 이들(잠수사)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딸 다윤이는요…”
하루에도 몇 번씩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엄마에게 딸은 너무나 착했다. 다윤이는 학원선생님이 “이렇게 순진하고 착한 애 처음 본다”할 정도로 순했던 딸이다. “몸이 아프니까 다윤이가 집안일도 많이 해줬다. 하루에도 전화를 몇 통씩 하고, 문자도 자주했다. 눈앞에 없어도 딸이 뭐하는지 다 알았다. 몸이 아파 손잡는 것 하나 마음껏 해주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허 씨에게 다윤 양은 퇴근길에 마중을 나와 ‘아이스크림 사달라’며 애교를 피우던 딸이었다. 어릴 때 많이 아파 밖에 나가지 못해 율동 비디오를 많이 보여준 덕분인지 걸그룹 노래와 춤을 좋아했던 딸. 나중에 유치원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던 딸의 모습이 여전히 선연하다.
 
박 씨는 “자다가 눈이 떠지면 세월호 안에 있는 다윤이가 생각난다.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억지로 보내 너무나 미안하다. 어서 빨리 찾아주고 싶다”고 전했다.

“만일 인양 후에 다윤이가 없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믿고 있다. 다윤이를 포함한 미수습자 9명은 세월호 안에 있다.”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는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 일반인 승객 이영숙·권재근 그리고 권 씨의 아들 권혁규 군으로 총 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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