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31대 신문왕
<삼국사기> 열전에는 설총이 신문왕에게 들려준 한 우화가 실려 있다. 이 이야기는 화왕(花王, 모란), 장미(薔薇), 백두옹(白頭翁, 할미꽃) 세 인물을 통해 지도자가 가져할 도리를 충고하고 있다. 이 우화가 바로 오늘날 전해지는 화왕계(花王戒)로,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친숙한 교훈담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신문왕의 태도에 시선을 옮겨보고 싶다. 설총이 전한 우화를 ‘화왕계’라 하여 후왕들의 경계로 삼은 이가 바로 신문왕이기 때문이다. 화왕계에 등장하는 화왕은 곧 신문왕과 다름이 없다. 화왕은 아름다운 장미와 강직한 백두옹 사이에서 고민을 했고, 백두옹의 일침에 반성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신문왕은 설총의 우화를 ‘계’로 삼고, 그를 높은 관직에 발탁했다. 이처럼 신문왕은 자칫 자신에게 거슬릴법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소통하고 수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신문왕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대업을 이어 신라의 통일 시대를 향한 과업을 충실히 해낸 인물이었다. 통일 직후 내부적 정쟁을 일소했고,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을 안집하여 정치·문화·군사 등 다방면에서 신라의 통합을 실현했다. 이러한 신문왕의 사회통합에는 설총과의 일화에서 볼 수 있는 적극적인 소통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소통은 오늘날 지도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더욱 절실하다.

소통은 시대를 불문하고 화합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필수 소양으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소통의 기회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소통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빈곤감과 답답함은 충분히 해소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설총과의 일화에서 보이는 신문왕의 소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도자는 선두에서 구성원들을 선도해야할 책임이 있다. 지도자가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회피하면 할수록 사회적 갈등과 비극은 필연이었다. 불과 몇 해 전 어떤 지도자는 사고 직후 승객들과의 소통을 외면하면서 수백 명의 생명을 차가운 바다에 방기하였다. 그 상처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방면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상위권에 모두 소통의 문제를 꼽고 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편 소통의 중요성은 이미 공유되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사회는 개개인의 주체성과 다원성을 인정하는 만큼 전통시대에 비해 소통을 위한 설득과 대화에 수반되는 피로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소통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으로 인해 소통의 과정을 외면하고 차단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지도자는 사회구성원들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소통이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소통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즉 소통은 서로의 경계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과정이자, 이해과 공감을 위한 제스쳐이며, 향후에 소모적인 과정을 줄이고 진전된 소통을 전개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다시 화왕계로 돌아가 보자. 화왕은 장미와 백두옹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고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백두옹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받은 화왕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吾過矣, 吾過矣)”라고. 이 말 한마디가 보여주는 소통과 수용의 자세는 신라가 통일 시대의 서막을 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잊지 말자. 덧붙여 설총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개개인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소통은 물론이요, 나아가 그 진통에도 담대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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