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씨네21>제공

“부끄러운 걸 모르는 게 진짜 부끄러운 거지”-<동주>中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는 역사에 대한 무지함에 부끄러웠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알고자 봤던 영화가 오히려 송몽규 독립운동가에 대해 더 많이 알아왔기 때문에 부끄럽다. 당신은 송몽규와 윤동주의 삶을 비교한다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는가?
 
1917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글을 잘 썼으며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갔다. 독립운동 중 일본경찰에 체포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다 꽃다운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누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가? 아마 윤동주라고 추측한 이도 있을 것이고 아예 모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부끄럽다. 사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요약한 내용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영화를 제작한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에 관심을 두고 알아보면서 송몽규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내가 이를 모르고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배우부터 비중 그리고 스토리라인까지. 윤동주가 아닌 송몽규가 주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주>는 시작부터 끝까지 흑백영상으로 그들의 삶을 풀어나갔다. 이는 긴박하고 유쾌한 최신영화와 달리 차분하고 담담한 영화로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흔히 ‘암흑’으로 표현하는데, 흑백영상으로 만들어진 <동주>는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고 사실감 있게 전달됐다.
 
영화가 후반 다다르자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다. 일본순사가 “합법적 절차를 걸쳐 처벌하는 것이 문명국과 비문명국의 차이”라면서 윤동주와 송몽규에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서류를 주는 장면이 있었다. 두 열사 모두 이에 대해 반문하다 결국 옥사를 하게 됐다. 나는 역사에 대한 무지함의 끝을 느끼고 소름이 끼쳤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영화가 끝나기 전 윤동주 시인이 서시를 읊기 시작했다. 영화 엔딩크레딧과 함께 두 인물의 연표가 닮은꼴처럼 올라갔다.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왜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는가. 이렇게 아름다운 두 청년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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