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쿤(Thomas 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저술이다. 쿤은 이 책을 그냥 「구조」라 불렀다. 구글 학술 검색에서 「구조」는 58,000번 이상 인용됐다. 20세기 책과 논문에서 이런 기록은 없다. 새 천년이 열릴 때 언론이 꼽은 20세기 최고 문제작 리스트에도 꼽혔다. 우리 번역판이 나온 지도 30여년, 패러다임(paradigm)과 패러다임 전환(shift)을 유행시키며 롱 셀러가 됐다.


세계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

1962년 영어 초판에 이어 재판이 출간된 70년 무렵, 「구조」는 이미 유명한 책이 돼 있었다. 3판은 쿤이 74세로 세상을 떠난 96년에 새로운 색인과 판형으로 출간된다. 2012년에는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4판에 이언 해킹(Ian Hacking)의 30쪽 소개 글이 덧붙었다.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해킹은 글머리에 “위대한 책은 드물다. 이 책은 위대한 책이다. 읽어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세계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정과 강렬한 열망으로 쓰였다.”고 썼다.

쿤은 43년 하버드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종전 후 모교의 이론물리학 박사과정에서 코넌트(J. Conant) 총장이 개설한 자연과학개론 강의를 거들게 된다. 내 경험으로도 이 과목의 강의는 도전이었다. 80년대부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 비디오에 홀려(?) 그걸 편집해 썼던 기억이 새롭다.

쿤은 48년 하버드대 ‘주니어 펠로’, 51년 하버드대 교양과정 과학사 강사, 조교수를 거치며 과학사(科學史)에 점점 빠져든다. 십여 년간 철학·심리학·언어학·사회학 등의 독서와 토론을 통해 그의 과학혁명 이론은 형태를 갖춰 나간다. 56년에 버클리대의 과학사 개설을 주도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사회과학자들과 토론하면서 패러다임이란 개념의 창안에 이르게 된다. 그는 사회과학자들의 토론에서 주제나 방법의 본질에 관한 논란이 빈번하다는 데 놀란다. 자연과학자들은 그처럼 근본적인 논쟁을 벌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 차이를 과학연구에서의 패러다임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패러다임은 「구조」의 키워드가 된다.


패러다임의 확장과 명료화

「구조」의 줄거리는 잘 알려져 있다. 과학 분야는 패러다임을 갖춤으로써 정상과학(normal science)으로 진입한다. 패러다임의 확장과 명료화는 과학 발전의 기본이다. 과학자사회(scientific community)는 패러다임에 안주하여 세 가지 유형의 활동을 펼친다. ‘패러다임 틀 속에서 자연현상 본질 탐구’, ‘관찰된 사실과 이론의 비교와 일치’, ‘이론과 사실 간의 일치를 높이는 패러다임의 명료화’가 그것이다. 패러다임과 상치되는 실험 결과를 얻는 경우 성급하게 패러다임이 틀렸다고 보는 과학자는 ‘연장을 탓하는 목수’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선가 기존 패러다임으로 해결되지 않는 변칙현상(anomaly)이 쌓인다. 그 때가 위기(crisis)다. 위기 국면에서는 기존 패러다임과 경쟁하는 패러다임이 하나 이상 등장하게 된다. 바로 과학혁명의 전조다. 과학혁명 과정이 무르익으면서 과학자사회는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향하게 된다.

이 때 연구방법과 현상 지각(知覺)에서 대규모 조정이 일어나고, 개념 체계도 재구성을 거치게 된다. 과학혁명에서 신 패러다임을 선택한 과학자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전향하는 격이다. 과학자사회의 신 패러다임 수용은 새로운 정상과학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이처럼 과학은 하나의 정상과학에서 과학혁명을 거쳐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쿤의 과학관이다.

쿤의 주장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구 패러다임과 신 패러다임 사이의 비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그 둘을 합리적인 잣대로 비교하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옛 것은 변칙현상을 해결치 못했고, 새 것은 변칙현상을 해결하지만 그동안에 풀렸던 문제에서 헤매기도 한다. 쿤은 이 둘 사이에는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 존재한다고 보고, 패러다임 사이의 전환을 신앙에서의 개종에 비유한다. 이 대목이 과학철학 분야에서 폭풍을 몰고 온다. 당시 과학철학의 주류는 논리경험주의와 카알 포퍼(K. Popper)의 과학철학이었다. 이 전통은 규범에 의해 합리적으로 재구성된 과학의 발전관을 신봉하고 있었다. 따라서 과학 활동을 역사적·사회적 측면에서 설명하고 그로부터 규범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쿤의 방법론과는 전혀 달랐다. 철학적 난투 끝에 쿤 혁명은 과학철학이 과학의 역사적·사회적 분석을 수용하고, 그것을 근거로 철학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탄생시킨다.

한편 「구조」는 과학사회학계를 열광시킨다. 심지어 과학지식의 형성 과정에 사회적인 요소가 개입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회구성주의’ 학파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쿤은 과학자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기대헀던 까닭에 오히려 그의 이론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라고 보았다.

쿤 이론에 대한 반향은 다른 분야에서 더 열광적이었다. 실상 쿤의 혁명의 단절성에 대한 발상은 정치·문화·음악·미술 등의 역사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쿤 이론은 이들 분야로 되돌아가 그 분야 지식의 변천에 대한 모델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쿤 자신은 이런 경향에 대해 과학 이외 분야는 단일 패러다임에 합의해 비판 없이 활동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차이점을 지적한 바 있다.


과학발전의 '구조'

쿤의 혁명 이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과학의 발전은 절대적 진리를 향해 직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단절적인 변화를 연속적으로 겪는 과학혁명에 의해 일어난다. 그는 ‘과학혁명’ 개념의 도입에 그치지 않고 과학사의 에피소드를 근거로 그 ‘구조’가 있다는 것을 깨끗하게 보여주었다. 이처럼 「구조」는 과학의 역사적·철학적 측면을 다룸으로써 과학과 사회와의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과학이 왜 근본적으로 문화적·사회적 활동인지를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그동안 홀려 있던 과학의 이미지를 확 바꾼 것이다.

쿤이 「구조」를 집필할 당시의 과학은 오늘날의 과학과 달랐다. 62년의 역사적 사건이 잘 보여준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공로로 왓슨(J. Watson)과 크릭(F. Crick)이 노벨상을 받았다. 헤모글로빈의 구조 연구로 페루츠(M. Perutz)와 켄두루(J. Kendrew)가 노벨상을 받았다. 바이오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구조」에는 ‘다윈 혁명’이 기술돼 있지 않다. 기초물리학 이론에서도 정상상태 우주론과 빅뱅 이론이 경쟁을 벌이던 그 당시와 오늘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온통 세상을 바꾼 정보통신과학의 경이로운 발전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 분야에서 「구조」의 논거가 참인지 여부를 판단할 몫이 후세에 남겨진 셈이다. 쿤은 훗날 패러다임의 의미에 대해 ‘광범위한’ 것과 ‘국소적인’ 것을 구분했다. 최근의 우리 과학기술의 현실을 보며 전자의 의미에서 나는 계속 쿤 이론을 떠올린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우리 과학기술은 새로운 프론티어를 개척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인식과 방법론에서 기존 패러다임에 매몰돼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김명자 교수(전 환경부장관, 제17대 국회의원, 현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재)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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