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의 살아생전 머리 모양을 했어요. 너무 보고 싶어서…….”
 
 
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2014년 4월 23일에 돌아온 故 오준영 군의 어머니 임영애 씨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말했다. 지난 달 21일 사회대 별관 11강의실에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진행됐다. 이 날 간담회는 총학생회 주최로 이루어졌으며 단원고 학생 故 오준영 군의 부모님인 어머니 임영애 씨와 아버지 오홍진 씨가 참석했다.  
 
어머니 임 씨에게 故 오준영 군은 멋있는 남자친구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는 “준영이는 엄마를 많이 생각하는 아들이었다”며 “메시지로 하트를 주고받기도 하고 내 옆에서 같이 잘 정도로 친근했다”고 전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은 꼭 자신의 이상형으로 남아있다. 군대를 가기 전까지는 엄마 품에서 잘 것이라고 말했던 아들은 수학여행을 떠나고 난 뒤 그러지 못했다.  
 
故 오준영 군이 부모님 곁으로 돌아온 4월 23일. 당시 팽목항에 있었던 그 순간은 부모님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해경도 선장도 정부 모두 단원고 학생들을 구하지 못했다. 아버지 오 씨는 “준영이 엄마와 나는 식사나 세수를 전혀 못한 상태에서 눈에 살기만 돋고, 분노와 적개심만 가득해 사람의 모습이 아닌 상태였다”고 말했다. 진상규명만이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같이 단식하고 삭발하고 서명운동을 하며 특별법 만드는 과정에서 분노에 가득 찼던 모습들에서 서서히 사람으로 변해가더라”며 “얼어붙고 찢겼던 가슴도 치유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작은 움직임이 모여 지난 달 14일부터 3일에 걸쳐 세월호 청문회도 진행할 수 있었다. 어머니 임 씨는 “청문회에서 박상욱 경장이 아이들 보고 ‘철이 없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할 때 입에서 욕이 나왔다”며 “해경이 없었으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00일이 넘은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욕먹는 것은 감수할 수 있지만 ‘노란 리본을 단 일반 시민들이 욕을 먹지는 않을까’하고 걱정이 앞선다. 어머니 임 씨는 “시민들이 먼저 만들어 준 카카오톡 노란 리본은 감동으로 다가왔다”며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시민들은 같이 움직여 주었다”고 전했다. 
 
故 오준영 군의 부모님이 바라는 것은 앞으로 자라나는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을 겪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 오 씨는 “어른 말을 무조건 듣는 수동적인 아이가 아닌, 능동적으로 내 주장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며 “돌발 상황에 처했을 경우 처신할 수 있는 안전교육이 이루어 져야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