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갈곳없는 땅끝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부르게 하소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욕심의 그릇을 비우게 해주시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용서의 빈그릇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땅의 끝
새로운 시작
넘치는 희망으로
출렁이게 하소서
-명기환, 땅끝의 노래 中
 
이별이란 것은 짧든 길든 언제나 마주하기 힘들다. 더구나 때가 지나면 그때와 같은 모습은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2015년의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이와 해남 땅끝마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2015년을 보내며 2016년의 희망을 함께 그려 본다.
 

희망의 땅끝, 새로운 시작 되는 곳

 
 
버스탄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땅끝마을에 다다르자 햇빛에 반사된 붉은 바다는 황홀한 모습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반도 최남단의 일몰 풍경은 쉽사리 볼 수 없었다. 아쉽게도 해가 구름에 가려진 것이다. 마지막 모습을 놓칠 것 같아 해안선을 따라 걷고 또 걸었지만, 결국 일몰은 놓쳤다. 하지만 ‘일출’이라는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 크게 아쉽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숙소를 나서자 특유의 새벽공기 냄새와 칼 같은 바닷바람이 먼저 반겨왔다. 일출을 보기위해선 땅끝마을 ‘맴섬’으로 향해 걸어가야 했다. 다행이 날씨가 맑아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해변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땅끝마을 해변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땅끝마을 비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일출을 기다렸다.
 
“어? 어? 저기 해가 뜬다!”
여자친구는 환호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느새 짙푸른 수평선 너머로 붉은 햇살이 구름을 뚫고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내뿜는 햇살은 주변의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장엄했다. 태양은 마치 우리에게 “행복한 한 해가 됐길”이라고 말하듯 따뜻한 햇살을 내리쬈다.
 
 
해질녘 고천암호, 수십만 마리 겨울진객의 날갯짓 하늘 덮다
 
 
매년 겨울이 오면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 마리의 ‘겨울진객’ 철새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그중 희귀조류는 물론 전 세계 가창오리의 95%가 찾아온다는 해남 고천암호를 들렀다.
 
“학생들 여기서 고천암방조제까지 걸어가면 돼요~”
약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가야 하는 긴 여정에 지쳐 쓰러졌을 때 쯤. 버스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은 평온한 모습의 작은 마을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마을주민의 말을 따라 길을 걷자 한쪽은 갈대밭, 한쪽은 바다인 이색적 풍경이 펼쳐졌다. 말로만 듣던 국내 최대 갈대군락지인 고천암호에 도착한 것이다.
 
시원하게 뻗은 길사이로 바다와 강을 넘나드는 가창오리, 원을 그리며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독수리가 날고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철새들을 가까이서 보기위해 갈대밭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붉은 노을빛 아래 몇 마리의 가창오리가 날아오르더니, 수십만 마리의 떼가 되어 각본 없는 군무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가창오리가 드넓은 갈대밭을 배경삼아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된 것 같았다. 벌떼처럼 뭉쳤다가 큰 먹구름처럼 퍼졌다가. 엄청난 날갯짓 소리가 가슴을 울리며 감동을 주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짧지도 않았던 5분 동안 넋을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진한 감동의 여운을 뒤로 한 채 해남터미널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버스가 모두 끊어져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기자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늦은 시간에 차를 태워주셔서 감사하다”는 기자의 말에 차를 태워주신 노부부는 “젊은 연인들이 외딴 마을에서 시내까지 걸어가기 힘들다”며 “아직 시골인심은 넉넉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짧았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해남 여행. 올겨울이 지나기 전에 아름다운 가창오리들의 군무와 장엄한 일출·일몰을 구경하러 가족이나 연인 또는 친구들과 오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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