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최윤정(일러스트레이터)
이 책은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천재의 시기에 태어난 하이젠버그(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가 그의 말년에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40여 년 간의 삶을 돌아보며 회고록으로 출간한 철학적 에세이이다.

원자물리학을 탐구하는 과정과 천재들과의 대화도 진지하고 흥미 있는 부분이지만 1차,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패전국 독일의 혼란기를 살아온 저자의 고뇌와 특히 핵무기의 개발과 대량생산이 되는 과정을 보며, 과학의 윤리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상황도 엿보게 된다.

1969년에 출간된 이 책은 세계의 지성인들에게 큰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이 유신 체제 실시와 정치적 격변기였고, 대학 내부가 이념으로 갈라져 싸우던 시기를 살아온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감동하여 독일어 원문으로 천착하는 중, 유신체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해직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역서는 해직교수가 되어서 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대신하여 출간하게 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더욱 특별한 애착을 갖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과학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고민
이 책은 현대원자물리학을 연구한 저자의 지적 탐색의 과정과 역경, 그리고 결과를 얻고서, 그로 인하여 일군의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완성되는 핵무기의 출현과 냉전시대를 보면서 깊은 회한과 더불어 과학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하게한다.

저자는 현대물리학이 전문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단히 추상적이고 어려운 수학적 관계를 규명하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대원자물리학은 철학적이며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1940년대 전반의 핵무기 개발과 50년대 전후의 핵무기 양산 비축과정이 이제는 많이 공개되었으나,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었을 때이다. 저자는 당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민감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물리에서 시작한 철학적 대화
이 책은 저자가 노벨상 수상(1932년) 이후 강연을 위하여 30여 년간 집필해 모은 에세이를 1969년에 편집하여 출간한 것으로 출간 이후에도 각 장 별로 여러 차례 나누어 재출간 되었다. 책의 분량은 325쪽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아 보이나, 저자가 장기간에 집필한 것이고, 다루는 분야가 이론물리부터 양차대전 전후 유럽과 세계의 상황 등에서 겪은 일들을 철학적 사변과 사색, 대화로 풀어가고 있으므로 그 내용이 광범위하여 그리 쉽게 읽어지지 않는 책이다.

이 책은 대략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는 저자가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게 된 과정, 개인적인 환경, 사고의 발전과정을 대화로 풀어놓은 부분과, 둘째는 현대 원자 이론물리학의 발전과정을 아인슈타인, 보어 등 당대 학자들과 대화하며 모색하는 부분과, 셋째는 핵무기와 원자력 이용에 관한 당시 학계와 학자들의 입장, 그리고 국가 간의 문제로 과학의 윤리와 책임을 다룬 부분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각 장별로 나누어 다루고 읽는 것이 좋지 않을 가 생각된다. 비 물리학도라면 어려운 물리 이론부분은 건너뛰고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저자도 그리 말하고 있다.

 

부분과 전체의 의미
현대 원자물리학 분야는 인류의 과학과 지성에 많은 충격을 준 분야가 되어 , 1970년 대 중반 이후 과학사, 과학철학, 물리학사를 전공하는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학설의 발전과 변천사는 물론 주요 인물에 대한 업적, 출간물과 개인사까지 상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영국-덴마크-오스트리아-미국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계열의 학문은 각기 부분과 전체를 우선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겠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부분은 실용주의 표상이고 전체는 독일 관념논의 사변적 경향 즉 자연법칙의 단순성, 연관성, 실제 이해를  추구하는 노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두 입장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이며, 이를 닐스보어의 말로 표현하면 “올바른 주장의 반대는 틀린 주장이다. 하지만 심오한 진리에 대한 반대는 또 다른 심오한 진리일 수도 있다.(The opposite of a correct statement is a false statement. But the opposite of a profound truth may well be another profound truth.)”라 할 수 있다.

‘부분’과 ‘전체’를 조망하는 길잡이
이 책은 현대 원자물리학 발생기의 한 주역이었던 저자가 직접 겪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으로, 후대의 과학사가들이 정리한 것과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는 기록물이다. 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과 ‘전체’를 조망하는 길잡이이다. 이 책은 선대로부터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고, 그의 신앙심과 종교에 대한 넓은 포용력, 그리고 독일 산악회 회원이고 상당한 고전음악(피아노) 연주자이었던 저자가 폭넓게 교류하고 살았던 격변시대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저자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동료 학자, 교수들이 학교에서 축출되는 상황을 겪으며 이들을 옹호하다가 회색분자로 몰린다. 이를 겪으며 살아간 과정, 그리고 그의 보편적인 인간성과 깊은 성찰 지성을 보여주는 저술로 이 책은 의미가 깊다 하겠다.

현대물리학 영웅들과 벌이는 대화록
이 책의 머리말 서두에서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과학은 “토론을 통해서 비로소 성립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질 것” 이라고 못 박고 있다. 플라토니스트인 하이젠베르크는 때로는 스승 보오(Bohr)를 소크라테스로 모시고 자기가 플라톤을 자처하며 대화를 풀어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가 소크라테스의 자리에, 그리고 바이츠제커(Carl Friedrich von Weizacker)를 플라톤의 역할을 맡게 하여 소위 20세기 초의 현대물리학의 영웅들을 상대로 벌이는 이 한 권의 대화록은 아마도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삶의 지침을 밝혀 주리라고 믿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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