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은 ‘학생의 날’, 즉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11월 3일, 일왕의 생일 축하행사에 강제 동원된 광주의 학생들이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통치에 반발해 ‘조선독립만세’ 운동을 벌였다. 한국 정부는 이 날을 ‘학생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 11월 3일, 정부가 내린 ‘학생의 날’ 기념선물은 역설적이게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폭탄이었다.

11월 3일 오전 11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했다. 당초 5일로 예고된 것이 갑자기 3일로 당겨졌다. 전날 자정까지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행정예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의견을 분석하는 절차도 없이 하루 만에 바로 확정고시를 발표한 것이다. 말이 국민의견 수렴이었지, 교육부는 이메일 접수를 닫아놓고 지난 2일에는 팩스조차 꺼놓았다고 한다. 2일에 변호사들과 법학교수 605명이 국정교과서가 위헌적이라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제출했지만, 물론 이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정부의 국정화 근거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좌편향’과 ‘자학사관’이다. 좌편향 교과서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며, 자학사관 때문에 학생들이 나라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통일되고 ‘옳은’ 시각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언어적 맥락도 상실해버린 이 말들이 도대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한번 따져보자.

먼저, 정작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국민 60%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밀어붙인 정부다. 역사학자들의 80-90%가 좌편향이라며 그래서 그들이 쓴 현행 교과서를 ‘종북몰이’한 것도, 학교에서 부끄러운 역사만 배웠다며 부모세대를 원망하는 내용의 홍보물을 뿌려대 세대갈등을 부추긴 것도 정부다. 역사학자 대회에 보수단체가 난입해 난동을 부리고, 반대화 1인 시위 교사를 학부모가 고발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풍경을 만들어낸 것도 정부다.

둘째,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성찰’이다. 어느 나라 역사든지 자랑과 부끄러움이 뒤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성찰을 통해 그 부끄러움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 것. 그게 역사를 배우는 이유다. 그럼에도, 하필 일본 극우파의 ‘자학사관’이란 용어에 기댈 만큼, 이 정부의 역사의식 부재나 그 빈곤한 언어적 상상력 앞에서, 우리는 차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셋째, ‘하나의 통일된 시각’을 시도한 교과서 국정화가 우리 역사에서 2번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유신체제. 그들 모두 그 시각이 ‘옳다’고 믿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너무나 자명해서 사족을 달 필요도 없다.

소위 ‘보수진영’이라고 자처하는 측에서는, 역사교과서는 시작일 뿐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이 ‘부끄러운 역사’를, 정부는 어디까지 끌고 갈 셈인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역사에서는 시간이 주인이라는 것을. 미래에 우리들의 이 고통스러운 현재가 어떻게 평가당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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