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벗어나 본적이 없는 나는, 비행기를 타면 신발을 벗고 타야하는 줄만 알았던 나는, 2014년 9월 교환학생이라는 학교 내 프로그램으로 중국으로 떠났다. 나는 중문과 학생이기 때문에, 나정도면 되겠지? 라는 자신감과 함께, 처음으로 외국을 떠나는 설렘 그리고 걱정을 가득안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중국어를 전공으로 배우고 있었지만, 막상 외국인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면 소극적인 성격 때문인지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고, 그 결과 중국어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중국으로 교환학생 지원을 했고, 3학년 2학기부터 1년이라는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면접을 통해 중국 중산대학 교환학생에 합격하게 되었다.

걱정과 설램

4시간의 비행에 걸쳐 도착한 광저우시는 나를 아주 뜨거운 열기로 환영해 주었다. 남부지역에 위치한 광저우는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을 만큼 아주 더운 도시로 유명한데, 한국에서 서늘한 가을 날씨를 느끼다가 출발한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더워진 날씨 때문에 나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걱정과 설렘, 그리고 자신감이 충만한 교환학생 시절은 시작되었다. 


  매주 금요일 밤 진행되었던 교환학생을 위한 중국의 다도문화, 단오절, 서예, 태극권, 종이공예 등과 같은 중산대학의 프로그램은 나로 하여금 대륙의 문화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게 해주었다. 특히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종이공예와 같은 프로그램이 나를 중국에 문화에 매료되도록 만들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서,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들과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12시 30분이거나 오후2시30분에 시작해서 오후6시에 끝나는 전공수업은 러시아, 포루투칼을 비롯한 유럽친구들, 멕시코, 미국과 같은 북아메리카 친구들, 콩고 와 같은 아프리카친구들, 이란과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 와 같은 아시아친구들과 함께 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친구들은 상업중국어와 같은 토론 지향적인 수업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나와 나누었고, 수업이 끝나면 그들의 방식대로 함께 놀거나 그들의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우리가 한국의 음식을 권유하기도 했다.

외국인 친구들과 토론 수업

비행기 한 번 타 본적 없던 광주의 시골 남자가,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음식과 문화, 사상, 경험을 공유하게 될 줄 생각이나 해봤을까. 아니 앞으로도 그런 경험이 있을까. 그 이외에도, 중산대학교 북문에 위치한 주강로(珠江路)에서는 밤이면 밤마다 춤바람과 태극권바람이 불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즈음, 말춤을 필두로 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중국에도 큰 열풍을 불고 있었는데, 이때 아주머니들 까지도 밤마다 나와서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말춤을 추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반가워서 그분들과 함께 나에게도 춤바람이 불었다. 그들 옆에 몰래 끼어들어가서는 신명나게 달린 나의 말춤은 그 아주머니들을 깜짝 놀래 키기에 충분했고, 아주머니들은 나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말춤'으로 광저우 톱스타

그분들 사이에서 당연 나는 톱스타가 되어있었고, 다음에도 나와서 같이 춰달라는 요청에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친근함과 열정사이에서 나는 이미 그들에게 매료 되었던 것이다. 아침에는 중국인들이 태극권으로 그들의 신체를 수련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문화체험으로 태극권을 살짝 배웠기에 그들 옆에서 태극권을 살며시 구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중국의 문화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중국에서의 생활을 모든 것이 나에게 경험이자 공부였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숨쉬는 것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어로 얘기해야 했기 때문에, 아직 많이 부족했던 나는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다녔다. 배움이라는 길에서 만족하지 못한 나는 또 학교 내의 수영동아리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도 나는 한국에서 배운 돌고래와 같은 수영실력을 뽐내며 그들과 함께 한 편으로는 체력을, 다른 한 편으로는 중국어 실력을 쌓아 가고 있었다. 

 

소극적인 성격, 적극적으로

이렇게 나는 소극적인 성격을 적극적으로 도전해나가면서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의 여행은 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였다. 첫 여행지로 광저우시에서 가까운 홍콩과 마카오여행은 머물렀던 11박12일간의 기간 동안 나의 막힌 귀와 닫힌 입을 열어주었고, 한국에서 온 소중한 친구를 위해 가이드의 역할까지도 맡아서 했다. 세상에 서울보다 사람이 많은 도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물 안 개구리는 홍콩의 휘황찬란한 빌딩숲과 마카오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이외에도, 심천과 동관 그리고 상해로의 혼자 여행은 나를 더 단련시켜주었고 특히나 상해에서 만난 홍커우 공원의 윤봉길의사 흉상은 25살 청년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중국인이 우리나라 사람을 이렇게 기념해주고 있다는 사실과, 타향에서 만난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감격이랄까. 

  중국은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일반 기차를 타고 가면 40시간이 걸릴 정도로 아주 큰 대륙이다. 남부지역의 문화, 중부지역의 문화, 북부지역의 문화와 요리, 생활 방식 등 모든 것이 다르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문화와 학기 중에 만났던 전 세계의 외국문화를 모두 이해하기는 나의 시간이 부족했다(나의 노력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생활의 꽃이라는 교환학생을 통해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도전을 경험했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그를 통해 이전보다 더 성장하게 된 나를 보면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잘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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