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지식의 최고 전당이자 학문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통해 얻어진 결과로서의 진리는 제일 먼저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수된다. 학생에게는 이 과정이 곧 진리탐구 그 자체가 된다. 대학에서 연구된 진리는 또한 사회 속에 적용되어 궁극적으로 인간생활의 개선과 행복에 기여하게 된다. 이처럼 연구와 교육과 봉사는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는 유기체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전남대학교가 교시로 삼고 있는 진리·창조·봉사는 대학의 성격과 사명을 잘 압축해 놓았다고 말 할 수 있다.

대학은 진리를 전수하는 교육의 장소

인류문명은 전승과 축적과정을 통해 발달했다. 그런데 어느 시기, 어느 사회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정 부분 불완전하고, 불합리하고, 모순된 모습들을 지녔다. 대학인들은 진리를 탐구하다 자연스럽게 현실 사회의 이런 불완전함이나 모순들과 만나게 된다. 대학인들은 이런 모순과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권력 등과 충돌할 수 있는데, 원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진리가 국가보다 우위에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문은 국가보다도 고도의 근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진정으로 그 본래 기능인 진리탐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진리 탐구는 정치권력이나 종교·자본적 권력에 의해 저해되거나 강요되어서는 발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대학은 진리를 전수하는 교육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전수과정이 자유의 부재로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대학의 임무는 전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닌, 학문적 정신을 전달하는 전당이다. 대학의 자유는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 등 표현의 자유를 포함하여 민주주의의 일반원리에 속한다.

대학의 사회참여, 다양한 방식

해방 이후 한국의 대학들은 민주주의와 대학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교수들은 글이나 서명, 그리고 때로는 거리에 나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웠다. 1978년 전남대 교수 11인은 박정희 정권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국민교육헌장의 비민주적·비교육적 성격을 비판하고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 풍토의 수립을 촉구했다가 구속되고 해직되었다.

1980년 5.18광주항쟁 때도 여러 명의 교수들이 5.17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의 만행을 비판했다가 해직되고 옥고를 치렀다. 전남대 교수들은 1980-2000년대에도 여러 차례 민주화를 위한 서명과 시국선언, 거리행진 등에 참여했다. 지식인의 사회참여의 전형적 모습 중 하나이다. 대학생들은 1960년 4.19혁명, 반유신투쟁, 그리고 1980-90년대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특히 전남대생들의 헌신과 희생이 컸다. 전남대학교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공동체로서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항상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사회참여를 했다.

사회참여의 또 다른 방식은 자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학은 국가와 지역사회의 중요한 씽크탱크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공업화 사회에서 첨단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탈공업화 사회, 지식기반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행정이 복잡해지고 과학 기술의 발달이 가속도를 붙으면서 사회는 대학이 보유한 전문지식과 기술의 전수 필요성을 실감한다. 국가나 지자체가 각종 위원회를 두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 교수들은 각종 자문위원회 참여 등의 형태로 사회참여를 하고 있고 이를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한다.

대학과 기업의 관계 역시 그 상호의존도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대학들은 기업에 필요한 첨단지식과 기술개발을 지원하거나 선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학은 연구결과의 산업체 이전, 신규산업의 창업 및 인큐베이터 기능, 더 나아가 과학단지 등을 직접 조성하여 지역경제와 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적 지식을 활용한 사회참여는 그 특성상 이공계 분야 교수들이 더 활발하게 하고 있지만 사회의 복잡화로 인해 사회과학분야 교수들의 사회참여 필요성도 증가하고 있다. 또 소득수준의 향상과 여가문화의 발달에 따라 인문학과 문화 예술분야 종사자들의 사회참여 요구도 증대하고 있다. 대학의 사회참여 필요성이 전공 불문하고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수도권 집중도가 도를 넘어섰다. 이것은 수도권 거주 주민들이나 비수도권 거주 주민들 모두에게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수도권 집중으로 표현되는 지역 간 불균형 성장을 바로잡는 것은 한국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필수적 과제이다. 특히 호남지역처럼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정상화라는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 국립대학으로서 지방에 소재하고 있는 전남대학교는 이런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학에 의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 사고가 공급되고 지역정부가 이런 상상력을 활용할 때 지역의 생동감이 강화될 것이다.

진리탐구와 교육은 대학의 자치와 자유가 존중될 때 활성화

우리나라는 1970-80년대의 혹독한 시련기를 거쳐 민주주의의 수준이 크게 신장되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대학의 사회 비판 기능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심해졌다. 정권이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에 대해 대학평가나 연구비 수주, 위원회 참여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대학의 자유와 자치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자연히 지식인들의 비판적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국가나 지자체가 주간하는 각종 위원회나 기업의 자문에 응하는 사회참여 형태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둘 다 필요한 일인데 한쪽은 위축되고 한쪽은 증가하는 형식으로 대학의 사회참여 방식에 균형이 깨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리탐구와 교육은 대학의 자치와 자유가 존중될 때 활성화될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수준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당연히 비판적 기능과 자문적 기능이 각각의 영역에서 인위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고 마음껏 발휘되어야 대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한다. 대학의 사회참여가 보다 활성화되기 위해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좀 더 공고해져야 할 것 같다.

대학의 사회참여는 사회와 이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는 주장하기를 “앞 세대의 유토피아인들이 없었다면 인간은 아직도 동굴 속의 비참하고 발가벗은 상태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모든 진보의 원리이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시도”라고 하였다. 아나톨 프랑스의 주장처럼 현존 사회에 대한 불만과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과 욕망이 바로 모든 진보와 개혁의 근원이며 보다 나은 생활을 설계하기 위한 원천이다.

대학이 이런 이상주의적 자세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은 기성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상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오늘의수준만큼 발전한 것도 대학생들이 현실정치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더 나은 사회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취업 등 현실문제에 붙잡혀 있는 대학생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대학생들이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대학의 사회참여는 사회와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며, 대학의 사회참여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대학의 사회참여 유형으로서 비판적 기능과 자문적 기능은 함께 중요하며, 각자 처한 위치와 개성에 따라 선택하되 상대방의 역할을 존중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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