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보는 시선은 외계인이 우리를 보는 시선과 같아야 한다.’ 즉, 인간이라는 특수성을 배제하고 똑같은 생물 종 하나인 Homo sapiens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만약 외계인이 우리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굉장히 재미있고도 한심한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있는 무수히 많은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자신의 터전을 파괴하고 서로 갈라져 싸우니 말이죠. 인간이라는 종을 ‘큰 힘을 가졌지만 무지한 종족’이라 표현할 것 같습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

생물학의 첫걸음은 바로 ‘생존경쟁’입니다. 개체 수는 늘어나는데 자원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생물은 경쟁합니다. 단, 자신의 생존과 번식이 확보될 때까지입니다. 자원을 확보하면 더 경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이미 충분한 자원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기 위해, 남의 자원을 빼앗기 위해 경쟁합니다. 사회성 동물인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권력투쟁, 부정부패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뿐일까요? 멀쩡한 강바닥을 파헤치기도 하고, ‘관광객 유치와 투자확대’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백년간 보존된 산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인간은 생존경쟁을 한참 넘어선 탐욕 때문에 서로 분열하고 자연을 파괴합니다.

이에 대한 좋은 반면교사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이 있습니다. 고대 이스터 섬에는 만 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인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구가 늘어나고 부족 간 경쟁이 심화되자 자기 부족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모아이 석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섬 중앙에 있는 바위를 해안가로 옮기기 위해서는 섬에 있는 통나무를 베어야 했죠. 그러면서 나무가 점차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석상 만들기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무가 사라지자 배를 만들 수도, 농기구를 만들 수도 없었고, 황폐해진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부족별로 나누어져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사망했습니다.

공멸을 부르는 분열

이스터 섬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닫힌계에서의 생태계파괴는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는 것. 아무 의미 없는 개발은 문명의 쇠퇴를 부른다는 것. 그리고 동족간의 갈등, 반목, 경쟁은 공멸이라는 것. 1000년 전의 작은 섬에서 일어난 문명의 생성, 발전, 쇠퇴의 과정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분열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코레일 민영화 사태, 공무원 연금개혁안,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까지. 산과 강은 파헤쳐졌고 국민은 항상 둘로 갈라졌습니다. 마치 이스터 섬의 상황을 보는 것 같았죠. 모아이 석상이 을씨년스럽게 이스터 섬을 내려다보듯 우리의 높게 세운 건물들이 한반도를 내려다볼까 두렵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분열하지 말고 우리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분열을 꾀하는 꼼수도 지양해야 합니다. 공멸은 생각보다 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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