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유기농 라이프
인도에서 5달간의 교한학생이 끝나고 2달간의 홈스테이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나는 약 10일간 케랄라주의 아야르커남, 트리슈르, 카눌 이라는 세 도시에서 각각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눌 이라는 도시는 그나마 커서 사람들이 가끔 지나가기야 하지만 트리슈르 아야르커남 같은 도시 특히 아야르커남은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도시다. 한마디로 시골이라는 말씀. 여행 중 한국인은 거울속의 나밖에 볼 수 없었고 당시에는 그 한국인의 모습마저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기차에서 만난 인도사람은 나더러 인도 사람이냐고 물어볼 정도. 당연히 한국말도 한마디도 못해본지 꽤 오래 된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점점 인도의 아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아야르커남에 있는 친구집 문을 들어섰을 때 나던 진한 코코넛 오일의 향기를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왜 누구나 그런 기억 있지 않나? 어렸을 때 친구집에 놀러가면 집집마다 나는 냄새가 달랐던 그런 기억. 어떤 집은 된장국냄새가 진하게 났던 것 같다. 그런 것처럼 친구 JISS의 집에선 진하고 달큰한 코코넛 오일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랄라는 인도에서 코코넛으로 제일 유명한 지방이기 때문이다. 사방이 코코넛 나무인데, 집집마다 마당에, 숲에 사방에 코코넛 나무가 있다. 가끔 코코넛이 자연상태로 떨어지는데 이건 흉기다. 일년에 코코넛에 맞아 죽는 사람이 꽤 된다니 혹시나 케랄라의 숲속을 거닐때는 주의하도록 하자.

 

케랄라주에서 머무르는 동안은 한국에서도 비싸서 쉽게 먹지 못하는 엄청나게 다양하고 정말 끝내주게 맛있는 유기농 음식을 먹고 지냈다. 점심시간 저녁시간이 되면 친구 어머니는 집 뒤에서 나는 타피오카를 뽑아 카파(삶은 타피오카, 조각내고 살짝 으깨서 먹는데 감자와 비슷하지만 좀 더 식감이 강하다)를 만들고 옆집에서 기른 닭은 잡아다가 치킨커리를 만들어 주신다. 샐러드로 나온 잭프룻은 집근처에 널려있고, 옆집에 놀러가서 후식으로 먹는 파파야는 집 앞 마당에서 바로 딴 걸 잘라다 주신다. 음식을 먹고만 있어도 건강해지고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넙죽넙죽 받아먹다 보니 순식간에 다시 살이 포동포동 오르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긴 소고기도 유기농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마을에서 저기 숲속에 돌아다니는 버팔로를 잡는다고 한다. 물론 버팔로는 주인이 다 있고 한 열두 집 정도가 돌아가며 소를 잡는 방식. 참고로 그 마을은 기독교 마을이라 닭 소 돼지고기를 모두 먹는다.

케랄라를 통해 본 인도는 정말 가족 중심적이고 종교중심적인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야르커남, 카눌에 있는 친구마을을 가면 이웃주민과 수십 년을 알고 지냈으며 이웃사촌이 진짜 사촌인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하나의 마을이 거대한 가족 공동체인 셈인데, 그래서일까? 이런 마을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청년들의 마음과 그들의 삶이 무척 건강해 보였다. 우리나라처럼 인도도 사회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농업인구도 줄어들고 직업이 변화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공동체의 삶이 강하게 남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많이 변하긴 했어도 이런 삶의 방식은 도시에도 남아 끈끈한 인도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름 모양만큼 다양한 모습의 인도
인도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종교이야기인데 내가 방문했던 세곳의 집은 종교가 다 달랐다. 아야르커남의 친구집은 기독교, 트리슈르의 친구집은 힌두, 카눌의 친구집은 무슬림 집안이었다. 종교에 따라 라이프 스타일도 천차만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어떤 종교든 인도인의 삶속에서 종교는 어떤 형태로든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챤 집안은 매주 교회를 가고 친구여동생은 방학을 맞아 교회에서 하는 성경캠프를 가기도 한다. 힌두가 종교인 친구 집에서는 매일 아침 푸자(집집마다 푸자라고 힌두신들을 모시는 공간이 있다. 또한 기도를 하는 행위를 '푸자'를 한다 라고 말한다.)를 드린다. 무슬림 친구집 여자들은 밖에 나갈 때 꼭 히잡을 두르고 나가고 하루 몇 번 씩 있는 기도시간엔 일과를 잠시 멈춘다. 결혼도 같은 종교의 사람과만 한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결혼하려고 야반도주를 하기도 하는데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 드라마에서도 흔히 쓰이는 주제다. 사실 쓰는 언어는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왜 하필 거기로 가는 거야? 무섭지 않아? 유럽도, 이국도 있는데 왜 거길? 인도로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흔히 tv에서 보게 되는 인도의 모습은 복잡하고 더러운 물이 흐르고 쓰레기가 쌓여있고 위험한 곳으로 그려진다.  사실 인도는 그런 모습 말고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모양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가진 나라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인도의 종교인 힌두교 말고도 무슬림, 시크교, 자인, 크리스쳔, 불교 등 수십 가지의 종교와 주마다 다른 22개의 공식 언어 1200여개의 다양한 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와 종교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또한 데어버릴 정도로 뜨거운 인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별이 쏟아지는 청정한 자연과 평화롭고 소박한 풍광 또한 가지고 있는 곳이 인도다. 그래서 내 마음도 내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 때문에 그렇게 녹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고 정말 행복하게도 그리고 너무도 운이 좋게 2달간 인도 홈스테이 여행을 하면서 더욱 깊고 다양한 인도의 모습을 배우고 돌아올 수 있었다. 친구들과 머물면서 매스컴이나 밖에서 보는 인도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모습 또한 인도의 모습이지만 그런 부정적인 단편적 이미지 말고도 더 다양한 모습이 이곳엔 있었다.

 
인도에서의 일곱 달의 삶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첫 방문, 볼리우드 댄스 대회 참가, Future MUN, 인도 축제 Holi, Fare well 파티 등등 굵직한 기억들과 사이사이를 메꿔주는 소중한 일상의 기억들. 살아가면서 이런날이 올까 라고 생각할 만큼 많은 뜨겁게 즐겼고, 사람들에게서 생각지도 못할 만큼 큰 사랑을 받아버렸다. 정말 마지막 며칠은 그 많은 마음들을 두고 어떻게 떠나야 하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떠남에 대한 주저함이 있었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에 그리움을 조금씩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만큼 인도는 나에게 각별한 곳이 되어버렸다. 이미 깊숙이 스며든 인도의 향기와 기억은 날 너무 많이 변화시켜 버린   같다. 대학생활의 막바지에 교환학생을 떠난  라 조금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사람들을 만나고 느끼기 위해 지금 내가 이곳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있기에 가슴에 남은 온기가 있기에 돌아온 지금 나의 매일에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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