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가 두통이 와 있었다. 확인해 보려던 찰나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범대순 선생님 1주기를 맞아 영문과 재학생이 추모 글을 써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써도 되는 것인가? 난 그 분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써야 할까?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봤다. 오월이 맑다. 요즘 그리운 것들이 종종 있다. 어린 시절, 놀러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집으로 가겠다는 내게 ‘지금은 너무 더운게, 해름참에 가거라, 좀 더 있다가, 해름참에’ 라고 말하던 나의 외할머니,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랐던 친구,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강아지 보미, 그리고 떨어질 걱정하지 않고 철봉을 타던 그 순간.

 그런가 하면 스쳐가지 않았어도 그리워지는 것들도 있다. 깃이 잘선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며 교정을 다녔다던 동경하는 여교수의 청춘이 그립다. 예이츠의 영원한 사랑 모드 곤, 숨길 수 없는 낭만이 풍부한 7~80년대 대학생활도 그립고, 알 수 없는 이들의 사랑하는 순간들이 그립다.

 오월의 교정은 언제나 푸르다. 목련은 함박만 하게 피었고, 장미는 이보다 더 화창할 수 없다. 동백은 이제 스쳐갔다. 많은 것들이 스쳐갔고 스쳐가고 있다. 속삭이는 연인들도 스쳐갔고 심각한 표정의 학생도 스쳐갔다. 흰 수염을 정갈하게 기르고 알이 콕 박힌 눈을 가진  선생님의 몇 십 년도 이곳을 스쳐갔으리라.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내겐 스친 인연이 없으므로. 내  글에서 구구절절 슬픔이 묻어난다면, 그래, 그것은 거짓이다.

방 가운데
이야기꽃이 피는데

등잔불 뒤에
구석참 한 사람

무등산 야생화처럼
숨어서 웃고 있다
               -범대순 ‘구석참’ 중에서-

 오랜 세월 문학과 함께하고, 무등산을 사랑하며, 아이 같은 표정과 청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신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시가 되어 우리 곁을 스쳐가고 있다. 한 번 만나 뵈었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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