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는 어느 카드회사의 광고 문구는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를 반복하며 업무 지시를 거부하다 결국 부랑자로 감옥의 돌담 밑에서 웅크린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를 연상케 한다.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세상의 일반적인 관습과 상식에 따라 살아가며 평온한 노후를 꿈꾸는 소설 속 화자 ‘나’는 분위기에서 풍기는 단정함에 이끌려 새로운 필경사로 바틀비를 고용한다. 그러나 ‘나’의 업무 지시에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바틀비는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를 반복한다.

일에 대해 무한한 열정을 지닌 칠면조, 과도한 야심으로 인한 소화불량의 희생자라고 생각되는 니퍼, 먹는 것에 모든 관심이 쏠린 생강 비스킷처럼 이름이 아닌 그들 각자의 인품과 성격을 잘 나타내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무실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다른 필경사 동료들과 달리 그는 칸막이에 둘러싸여 단조로운 벽돌 벽을 마주보며 필경만을 되풀이 한다. 
  
일상을 거부하는 바틀비의 행동

질서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오직 일과 삶의 의미를 동일시하는 칠면조,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떠나 더 높은 위치를 바라며 때로는 이 탐욕 때문에 짜증내고 분노하는 니퍼, 오직 먹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 생강 비스킷, 그리고 부와 명예에 대해 욕심이 있으면서도 적당히 양심을 지닌 나라는 인물은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간군상이다.
스스로 체계를 유지하는 한 조각으로 살아가는 이 인물들과 달리 일상을 거부하는 바틀비의 행동은 이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매력적인 이 소설이 들뢰즈, 네그리, 지젝, 한병철 등의 철학자들에게 시대를 분석하는 소재로 자주 언급된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힘
법원의 필경사라는 그들의 직업은 사회 통념을 벗어나고 부수기 위해 시도하는 인간들의 충돌 속에서, 기존의 사회 체제를 지속시키고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간섭하고 통제하는 관습과 제도의 당위성을 되풀이하고 주입한다. 사회를 몸과 정신으로 강요받고 기억하는 그들에게 있어 필경 대조를 거부하고 마침내 필경도 거부하는 바틀비라는 존재의 등장은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고 온갖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적당히 융통성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바틀비의 조용한 거부는 분노의 대상이 되지만, 어느새 그들의 말투도 조금씩 바꿔 놓는다. 아무런 강요도 설득도 하지 않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라는 한 마디로 바틀비는 인간이란 존재에 파동을 일으킨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봄의 변화 앞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에게 온 몸으로 거부를 표현했던 바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힘을 보여 준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