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교원 2448명 중 660명은 비정규교수입니다. 교수라는 직업 뒤에 숨겨진 그들의 모습. 힘이 들어도 눈을 반짝이는 학생이 있어 지칠 수 없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문광일 비정규교수(독일언어문학)와 함께했던 하루입니다.

주어진 시간 6개월

평범한 월요일의 시작이지만 문 교수의 아침은 조금 더 이르다. 강의 내용을 생각하고 유인물을 챙기다보면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이 부족하다. 1교시라서 그런지 지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궁금한 것을 질문하라”며 다른 학생들을 기다리니 비어있던 자리가 하나둘 채워진다.

학교가 남는 수업시간에 맞춰 강사를 섭외하기 때문에 시간표를 바꾸기는 힘들다. 문 교수는 “그나마 우리 대학은 수업시간이 일찍 나오는 편이지만 다른 대학들은 계약하기 일주일 전에 시간을 말해주는 곳도 많다”고 한다. 시간을 조정할 여유가 없으니 수업이 겹쳐서 하나를 포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비정규교수는 6개월마다 취업의 불안을 겪는다. 6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한 학기 강의를 많이 맡았다 해도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운이 나쁘면 강의를 하나도 맡지 못하고 실업자 신세로 한 학기를 보내야 할 수도 있다.

강의를 맡았다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수가 부족해 폐강이 되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학생수가 채워지길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다가 개강이 되고 수업이 확정돼야 안심을 한다. 물론 이 역시 6개월 동안만이다.

연봉 1,400 복지는 언감생심

문 교수는 “이번 학기 뜻하지 않게 생긴 강의들이 있어 일주일에 18시간 강의를 하게 됐다”며 “다른 교수들을 보면 일주일에 6시간 정도 수업을 하는 교수가 많다”고 말했다. 2014년 1학기 기준 우리 대학에서 전업강사의 평균 일주일 강의시간은 5.8시간. 한 시간의 강의료가 약 8만원인 것을 생각하면 연봉은 1,400만원에 못 미친다. 부족한 급여 덕에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1주 15시간 이하를 근무하여 최단시간근로자로 여겨지기 때문에 유급휴일이나 휴가도 없고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나의 근로지를 기준으로 하기에 학교를 돌아다니며 12시간, 4시간, 2시간 수업을 하는 문 교수 역시 최단시간근로자다. 더욱이 방학 중에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학교와 6개월 기간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이중 근무로 처리가 돼 할 수가 없다. 그는 “아내가 고등학교 교사인데 남편인 나보다 처지가 나은 것 같다”며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늘 미안하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에서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다음 학교가 있는 목포로 향한다. 평소에는 이동시간이 부족해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오늘은 중간의 한 학교가 체육대회로 휴강을 한다고 한다. 덕분에 점심시간에 한 시간 여유가 생겼다. 오랜만에 곰탕을 한 그릇 맛보려 길가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편안한 식사를 하기에 한 시간은 짧은 시간이다. 나오지 않는 곰탕을 “빨리 좀 주세요”라며 연거푸 재촉했다. 김이 펄펄 나는 곰탕을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들이킨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차를 타고가면서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별로 길지도 않다”며 “강의를 하러 서울에서 광주까지 내려오는 교수들도 있다”고 말해준다.

강의료 8만원에서 기름값을 빼면 고작 3만 원짜리 수업인 셈이다. 자가용을 이용하고 싶어도 그러면 오히려 기름값이 더 나와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돈도 돈이지만 한 시간 강의를 하려고 오며 가며 7시간을 비좁은 버스에서 보낸다니 몸은 또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을 하다보니 목포로 향하는 비좁은 자가용 안이 아늑하게만 느껴졌다. 바쁜 일과에 힘들 법도 한데 그는 “수업을 많이 한다는 것이니 다행스럽고 뿌듯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내년 1월 1일 시행을 앞둔 시간강사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시간강사법은 일부 시간강사를 교원에 포함시키지만 교육공무원법 등의 적용대상에서는 제외해 무늬만 교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업강사를 교원확보율에 반영 할 수 있게 해 수업시간을 몰아주기 위해 집단해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는 이를 두고 “달라진 부분은 없고 사람을 줄여 강의시간을 몰아주고 강의료를 올리자는 내용이다”며 “비인간적인 정책으로 반드시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수업 시작 시간을 몇 분 남기지 않은 채 도착한 문 교수. 바삐 주차를 하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학생들도 힘들텐데 교사가 지친 모습을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니다”고 말하는 그. 거울 앞에서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빗는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강의실로 향했다.

그래도 수업은 나의 길

광주로 돌아가는 길 근처에 있는 항구를 들렀다. 문 교수는 “직장인들의 퇴근시간과 겹치다 보니 여기서 잠시 쉬고 가나 바로 가나 도착시간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해가 뉘엿뉘엿 저가며 배들을 붉게 물들였다. “바쁜 일상 중에 이런 날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며 “이것도 운이라면 운이다”고 말하는 그. 오래 있을 여유는 없다. 잠시 노을 아래를 거닐다 다시 차에 오른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 문 교수는 조심스레 기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안정적이지 못한 일자리와 부족한 급여.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 때문에 직업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다른 길로 갔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도 했고 실제 그렇게 해서 직업을 바꾼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이 일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저 가르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을 보면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문 교수. 그에게 수업이란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뜻깊은 일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주는 길’이었다.

광주에 도착하니 주변이 어둑하다. 괜찮다는 데도 굳이 학교에 기자를 내려주고 떠나는 문 교수. 시계를 확인해보니 어느덧 밤 9시다.

내일 아침 7시 10분 그는 셔틀버스를 타고 여수캠퍼스로 강의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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