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박상문(문화콘텐츠·11)

대학 평가를 근본적으로 살펴보고, 평가의 배경, 부작용, 개선책을 검토해 본다. 관리의 기본은 "Plan-Do-See"의 과정으로 마지막 단계인 “See"가 계획대비 실적을 비교하여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게 해주는 평가다. 평가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찬성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평가지표와 평가결과의 활용목적 등에 따라 이견과 반론이 나온다.

평가 도입의 배경과 부작용

먼저 평가 도입의 배경을 보자. 현재 대학평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과거의 잘못된 교육부 정책에 의해 과다 공급된 대학의 구조조정 필요성 때문으로 생각된다. 인구수와 진학률을 감안한 학생수 예측에 근거하여 대학설립과 정원조정을 하여야 했다.

그러나 1995년 ‘5·31 교육개혁 조치’에 의해 시행한 ‘대학설립 준칙주의’ 때문에 대학이 과다 설립되었다. 이는 교육부 관료의 대리인 문제와 사학재단의 자신과잉(hubris)에 따른 과다투자가 그 근본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교육부 정책 실패에 대한 철저한 검토·분석·반성이 필요하며,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한 관료 및 대학설립 주체들에 대한 책임추궁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의사결정의 지배구조를 확립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다음은 평가의 부작용 문제다. 지난 2003년 ‘전국 경제학 물리학 문헌정보학 분야교수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교협 학문분야평가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서 지적한 내용의 상당부분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그 동안 각 대학들에서는 대교협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기 위해 대교협이 요구하는 수십 개 평가항목들에 대해 조작된 증빙자료를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연구와 교육에 투입되어야 할 대학 교수들의 능력과 시간을 이처럼 대부분 평가만을 위한 서류, 엉터리 가짜 서류의 생산에 허비하게 하여 국가경쟁력을 좀먹게 하고 있는 현행 대교협의 평가시스템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평가의 부작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본다.

  1. 평가 점수 높이기 위한 꼼수 및 조작
피평가자는 평가 지표를 조작할 유인을 갖는다. “최근 초중고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의 조작이 자행되고 있다. 조작은 대체로 '조작공모-조작행위-적발-징계-당국 조사-재발방지대책-또 다른 조작공모'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 대학은 학교나 교직원, 학생의 명예와 재정을 위한 조작이 많다. 성적조작, 취업률 조작, 충원율 조작, 연구실적의 부풀리기와 연구비, 학비 빼돌리기 등이다.(아시아경제, 2013.11.13)“ 

  2. 잘못된 평가 지표의 부작용
  공공선택이론과 대리인 이론 관점에서 분석하면, 교육부와 대학 모두 단기업적주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구 소련의 못 생산공장 사례에서 한 달의 목표가 생산량 100kg이었는데, 한 달 대부분을 놀고, 월말에 100kg짜리 못 한 개를 생산했다는 일화가 있다. ‘논문 수’의 평가지표를 사용하게 되면, 연구의 질 보다는 양에 집중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3. 고도의 인지·정신작용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과도한 보상이 성과를 낮추는 역작용이 발생.
  인지적으로 쉬운 일에는 보상이 성과를 높이지만, 고도의 지적능력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보상을 높일수록 역작용이 커진다고 한다. 민감도가 높은 보상은 좁은 목표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넓게 생각하고 창조적인 연구를 하여야 하는 대학에는 적절하지 않다.(참고, Dan Pink: The puzzle of motivation, Ted Talk 2009; Dan Ariely, Uri Gneezy, George Loewenstein, and Nina Mazar, 2009, Large Stakes and Big Mistakes, The Review of Economic Studies) 행동경제학에 의하면 친사회행동 등 고귀한 행동이 화폐 적보상과 연계되면, 상업적 거래로 변질되어 외재적 보상이 없으면 하지 않게 되는 부작용인 구축(crowding out)효과가 초래된다고 한다. 

  4. 사회의 방향과 정부정책을 감시하고 반대의견도 제시할 수 있는 견제세력의 실종 가능성
  규제의 포획이론(capture theory)은 공적인 의사결정자에 대한 외부 압력과 로비에 의한 영향력을 감안하여 독립성의 확보를 중시한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 정권이 바뀐 후에 밝혀지는 비리를 보면, 권력의 압력이나 로비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의사결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독립적·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 특히 더 필요해진 상황을 다음 기사가 웅변한다. 정권에  휘둘리는 감사원도 믿을 수 없으니, 독립적인 제 3의 전문가 집단에게 재검증을 하자는 주장이다. “MB정부 4대강 사업에 대해 감사원은 정권에 따라 정반대 감사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1월 감사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니 박근혜 대통령 당선 뒤인 2013년 1월에는 총체적 부실이라고 결론을 바꾸었으며 그해 7월에는 대운하사업을 염두에 둔 설계라고까지 했다. 정권에 따라 감사 결과가 오락가락한다면 누가 감사원을 신뢰하겠는가.(매경, 2015.04.06)”

   견제의 필요성은 국가차원의 위험관리를 위한 포트폴리오 전략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국가 정책방향을 단기적인 안목에서 결정한다면, 그 방향이 잘못 되었을 경우 결과는 너무나 심각할 것이다. 대학·교수부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신뢰집단이 되고 비판적 견제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야 할 것이다.

  5. 교육부 관료의 대리인 문제와 일부 비리사학재단의 문제를 악화시킴
  교육부 관료는 교육정책을 결정할 때 자신들의 퇴직 후 취업자리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교육정책을 추진할 유인이 있다. “구조조정 칼날 꼼수로 맞서는 대학들, 5년간 7명 사립대 총장 된 교육부 고위관료들, 사실상 로비스트로(매경 2014.04.13)” 기사제목은 이러한 대리인 이론의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년대계가 돼야 할 교육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종합발전 방안, 특성화 방안, 개혁방안, 혁신방안...’을 도입하고 있으며, 대학은 그를 추종하고 있다. ‘일반적 예산지원’이 아닌 특정 사업위주의 정책은 사익을 추구하는 교육부 관료와 그러한 정책환경에서 비교우위를 갖는 일부 비리사학이 선호하는 정책방식인 것이다.

대학을 살리는 평가가 되려면

그러면 대안·개선안은 무엇인가?
1.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보공개에 의한 자율규제다. 대리인문제 발생의 근본원인이 비대칭 정보다. 교육정책관련 정보와 대학관련 정보를 많이 공개하되, 그 정보에 근거한 판단은 관련 당사자들이 할 수 있도록 하여, 정보공개에 의한 시장규율이 작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전문직일수록 투명성에 의한 자율적인 동료평가와 명성 등이 중요하다. 전문가의 윤리의식과 동료의 평가에 의한 명성효과가 느리지만 궁극적인 방안일 것이다.

2. 교육위원회의 설립이다. 교육부 관료의 단기실적주의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교육부 대신에 장기적 관점에서 백년대계를 설계할 수 있는 독립적인 교육위원회를 설립한다. 잘못된 방향에 집중했을 경우의 그 파국을 생각하면, 국가차원의 위험관리를 위한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의사결정 주체가 많아야 된다.

현재의 권력과 자본의 배분상태에서 설정하는 미래는 궁극적 사회의 올바른 방향에 맞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참호구축 문제(economic entrenchment) - 현재 불균형하게 배분된 의사결정권이 그 결정권 가진 사람·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사회시스템을 유도하는 문제 - 를 생각하면 국가의 계획과 자원배분은 단기적인 고려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3. 지식인의 사명을 자각하고 신뢰집단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부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순종만 하지 말고, ‘과연 백년대계 관점에서 올바른 길인지’를 성찰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과 대학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정책 실패·실수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고 사회 방향을 생각할 집단 필요하며, 이 집단은 신뢰집단이 되어서 사적·집단적 이기심을 초월하는 의견을 제시하여야 할 사회적 사명을 가졌다.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이 구축되고, 무엇보다도 교수사회의 뼈를 깎는 자정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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