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에 자연히 녹아들어 상대가 되어보고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인류학도인 내가 마음에 늘 새기는 말이다. 그러려면 누구보다 자주, 많은 사람과 만나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하는 것을 뛰어넘는 교류와 교감도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와 닿기엔 무리가 있다. 시민단체에서 인턴 간사로 일한 지난 4개월은 그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 생각을 공유하는 '오픈테이블' 진행 모습

열린 공간, 오픈마인드와 오픈테이블
이제 첫 걸음을 시작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담으로 다가왔다. 막연한 책임감에 마음속으로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함께 인턴 간사를 맡은 친구와 함께 하나하나 배워가며 일을 시작했다. 업무보다는 이곳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시민단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시민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내 건 이곳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각과 활동을 공유하고,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곳이었다. 시니어, 청년, 시민주체, 학교, 공유경제로 나뉜 여러 위원회에 자유롭게 소속되어 매주 회의를 거쳐 기발한 모임을 만들고, 결과를 내는 모습이 내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회원들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우리 인턴 간사들도 위원회에 속해서 회의를 도와주기보다는 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활동한 기억이 더 깊게 남아있다. 각 위원회 회의에서 제안된 프로그램들은 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세상에 나온다. 이 과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일을 하면서 모두 지켜보는데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회원관리부터 회계 관리 까지 많은 업무를 보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였다. 송년회는 술이 아닌 퀴즈와 내년 계획 스피치로 채워나가고, 위원회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롭게 열려있다. 어른들은 청년에게 귀 기울이고, 청년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자리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이뤄졌다. 사람을 만나는 최전방의 현장에 대한 부족함을 항상 느끼던 내게는 맞춤형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내게 깊게 와 닿은 것은 ‘오픈테이블’이다. 생각에서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론, 그리고 그 생각들을 이어 붙여 결과를 내는 토론을 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인상 깊었다. 회의를 오픈테이블로 진행해보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교육실태’라는 무거운 주제를 던져 고등학생들을 모아 토론 진행자를 맡아 보기도 했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스스로 느낀 점과 생각을 말하며 재미있게 토론 할 수 있는 방법을 서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사람과 만나는 매 순간, 나는 신입생이 된 것만 같았다.

▲ 청년위원회의를 하는 모습

내가 직접 사회를 만들고 변화시키는 곳
아침 산책을 하다 핀 꽃 사진을 보내며 서로에게 봄이 온 것을 알리고, 푸른길을 걷다 시간이 나면 사무실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함께하며 하루의 일을 묻는 회원들 덕분에 마음도 부자가 되었다.

회원관리를 하며 100명이 넘는 회원들의 이름을 다 외웠다. 모두의 직장에서 지친 몸 이끌고 늦은 시간 사무실에 모여앉아 열띤 토론을 하는 회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도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그 곳에선 나는 정말 ‘대학생’이고 싶었다. 정말로 이 시기의 대학생이 하는 생각과 행동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어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이곳에서 인턴 간사로 일한 것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변화시킨다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은 나를 분명히 성장시킬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아직은 내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눈치 챌 수 있는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께 일한 친구와 자주 이야기하던 것이 있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나는 무엇을 느끼는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조금 더 단단한 책임감이 생긴다. 인류학도인 나로서 느끼는 배움의 보람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사회를 좋게 하려는 움직임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많이, 자주 있다. 그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나도 아직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그 사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며 한 걸음 내딛었다. 인터넷 검색창이 아닌 주위에서 시민단체를 찾아보길 바란다. 분명 생각보다 멋진 사람들이 넘치는 곳일 것이다.

다음호에는 인턴체험기④-입법보조원이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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