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개봉된 양 주남 감독의 데뷔작 <미몽(迷夢)>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극영화다. 이는 그동안 문서로만 그 존재가 전해져 왔으나 2005년 12월, 중국의 중국전영자료관에서 자료가 발견되어 현존하는 한국 극영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라는 타이틀만으로 가치 있을 뿐 아니라, 1930년대 일제강점기 말 경성의 모습, 당시 사람들의 말씨, 행동 양식을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영상 자체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 또한 크다고 볼 수 있겠다.  

1910년 8월, 한일 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제의 행정 구역으로 속하게 되고 국권을 강탈당했다. 조선 총독부의 설치 이후 본격적으로 일제의 통치 하에 접어들었으며, 일본은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을 인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수탈하고 민족 해방운동을 압박함과 동시에 보수적이던 한국사회에 반 강제적이나마 근대화의 물꼬를 틔워주었다.

 이러한 신문물의 유입은 전통적 유교의 여성상에도 위협을 가하게 된다. 사실, 산업화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생산의 주체가 된 여성이 가지는 지위의 변화는 급작스러움과 동시에 이미 예견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초연된 헨리 입센의 <인형의 집>이 불러일으켜온 ‘신여성’에 대한 담론이 팽배했을 무렵 개봉된 이 영화는 당시 신여성에 대한 대중적 관점을(정확히는 전근대적 남성들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근대화를 통해 무분별하게 수입된 근대문명의 영향으로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던 전통적 여성관을 사회문제로 받아들이며 이러한 풍토를 고발하는 일종의 계몽영화인 것이다. (이는 영화 <자유부인(1956)>과 같은 맥락인데, 자유부인의 원조가 바로 이 미몽(迷夢)이라 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 그저 비싼 옷을 찾으며 처음 본 남자와 눈이 맞아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서는 여주인공 ‘애란’의 설득력 없는 행동은 당대 뜨거운 감자였던 신여성을 ‘풍기문란’, ‘비도덕적 태도’, ‘모성애 결핍’ 등 일부종사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 여성상으로 보여준다.

새장을 벗어나고자 하는 새는 나쁘다.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 ‘애란’은 사실상 비난받아 마땅한 인간으로 서술되고, 영화 <미몽>은 이런 우리의 주인공에게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서사구조를 맛보이며 딸을 자동차로 들이받게 한 애란에게 최후의 독배를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이 날 즈음, 다른 살림을 차리러 집을 나서는 어미를 붙잡던 딸 ‘정이’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몰차게 뿌리치던 애란이 병실에 누워있는 딸을 보고 이제와 크나큰 죄책감을 느껴 독을 마시고 자살한다는 설정은 오히려 어색하다. 신여성이고자 했던 애란, 극장에서 담배를 입에 물며 그녀는 스스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사랑의 실패와 흔들리는 녀성의 가치관 속에서 그녀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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