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청량리에서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주위를 둘러봤다. 한 여자가 미처 다하지 못한 화장을 하기 위해 얼굴을 매만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어폰을 귀에 꼽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아직 서울의 출근길 풍경이 낯설다. 내 목을 감싼 넥타이와 반짝거리는 구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났다. 시청역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빌딩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도 한 종합편성채널 사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 투입되기 전, 3일 동안 열 두 명의 인턴 동기들과 회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주로 회사 비전과 철학, 대략적인 방송뉴스 제작과정 등을 담은 커리큘럼들로 꾸려졌다. 그 때는 몰랐다. 따뜻한 히터 바람, 그리고 서먹했지만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던 동기들이 그리울 줄은. 마지막 날, 보도본부장이 마련한 회식에서 다 같이 건배를 외치고 ‘쏘맥’을 털어 넣는 것으로 교육이 끝났다. 

나와 동기들은 두 개 조로 나눠졌다. 한 달은 사회부, 나머지 한 달은 각자 원하는 두 개 부서로 배치되는 방식이다. 나는 사회부를 먼저 가게 됐다. 2월에는 정치부와 사회정책부로 가게 된다. 내가 입사한 곳은 언론사 중 유일하게 인턴기자도 ‘마와리’(사회부 수습기자가 1~4개월가량 경찰서나 대학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찾고 취재 훈련을 받는 것)를 돈다. 

라인(취재구역)도 배정 받았다. 혜화라인(동대문경찰서-혜화경찰서-강북경찰서)이다. 1진 선배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걸었다. “일단 혜화경찰서로 가 봐.” 지독하게 추웠던 1월. 그렇게 첫 마와리를 돌기 시작했다.
 

“저 형사님 간밤에 뭐 일어난 사건 없나요?”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린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 댈 시간이 없다. 8시에 2진 선배에게 첫 보고를 하기 위해서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1월의 한기가 피부에 닿는다. 바지 안에 껴입은 타이즈도 새로 구입한 아웃도어 패딩도 소용없다. 옷깃을 바짝 세우고 동대문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처음 도착해서 찾는 곳은 형사당직실이다. 밤사이 관할구역 내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출입문 가까이에 앉아 있는 형사팀장에게 “○○○○ 기자 유민호입니다”라고 말하면 문을 열어준다. 

마와리 첫 날에는 이마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문 밖에서 10분 동안 쭈뼛쭈뼛 거리며 서있기도 했다. 수십 개의 사무실로 쪼개진 거대한 경찰서 안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아무도 사람은 없었다. 몸으로 부대끼며 알아가야 했다.

늘 그랬듯이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간밤에 무슨 사건 없었나요?”라고 내가 선공을 한다. 역시 “조용하네요. 오늘처럼 조용한 날이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선배한테 보고할 사건 없으면 저 오늘 정말 큰일 나요. 술 먹고 사람 때린 거 이런 거라도 알려 주세요”라고 최대한 엄살을 부린다. 

 마지못해 자잘한 폭행사건 한 두 개 정도를 귀띔해준다. 일명 ‘면피용’ 사건이지만 최대한 세세하게 수첩에 받아 적는다. 어떤 팀장들은 이마저도 귀찮게 여겨 사건개요를 적은 종이를 찾아오는 수습기자들마다 받아 적으라고 건네주기도 한다. 형사당직실 한 귀퉁이에는 아침이 다 되도록 술에서 깨지 못해 졸고 있는 취객이 종종 눈에 띈다. 당직으로 밤을 꼬박 샌 형사들도 잠시 눈을 붙인 채 다가오는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형사당직실에서 빠져나와 민원인 대기실에 자리를 잡는다. 노트북을 켜고 경찰서에서 밤사이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한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혜화라인 내 타 언론사 보도, 서울종합방제센터 홈페이지에 등록된 화재발생현황을 체크한다. 정리한 사건과 같이 선배에게 보고할 준비를 한다. 

첫 보고시간은 오전 8시, 마지막 보고는 오후 9시다. 보고시간은 두 시간 간격이다. ‘면피용’ 사건마저 없을 땐 다가오는 보고시간을 맞이하는 게 고역이다.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때려볼까?’, ‘조그맣게 불이라도 질러볼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보고시간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선배와 연결된 메신저 대화창을 켠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현재 동대문경찰서 특이사항 없습니다.’

 

 

경찰서가 전부는 아니다
  
 사회부에 몸 담았던 1월은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특히 1월 10일, 의정부에서는 아파트 화재로 4명이 숨지고 12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화재 발생 다음날 현장으로 이동해 선배들을 도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까맣게 타버린 아파트 외벽. 임시 대피소를 방문한 정치인들에게 욕 한 바가지를 퍼부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이재민들.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 회피에 급급한 공무원과 시장. 합동분향소 조차 마련해 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에 눈물 흘리던 유가족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경찰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살인사건 현장을 찾기도 했다.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귀농문제로 부부가 다투다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결국 자신도 목을 매 숨진 사건이었다. 이동지시를 늦게 받아서 이미 주변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나서야 현장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지하주차장에서 남편이 목을 맨 자리에 서봤다. 목을 맬 때 사용한 끈 조각들이 주위에 떨어져 있었다. 뒷목이 싸늘해졌다.    

 나는 당신의 밤이 부럽다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마와리를 돌며 보낸다. 자연스레 혜화라인 내 타 언론사 수습기자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경찰서지만 서로가 기자라는 것을 한 눈에 직감할 수 있다. 두꺼운 점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초경량 노트북 그리고 슬프지만 약간 생기를 잃어버린 피부를 통해서다.  

인턴이라는 내 신분을 밝히면 “아니 인턴도 마와리를 돌아요? 그 회사 독하네.”라는 반응이 꼭 돌아온다. 수습기자들은 밤 9시인 내 퇴근시간을 가장 부러워했다. 실제 그들의 수면시간이 두 세 시간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그들의 밤이 부러웠다. 어찌 보면 그들 눈엔 나는 그냥 잠시 왔다 가는 손님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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