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고전영화 관람목록은 <이어도>, <하녀>, <뽕>, <바보선언>뿐이다. <이어도>는 봄날의 캠퍼스에 칼럼으로 내놓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고, <하녀>는 봉감독님께서 <하녀DVD판>에서 코멘터리를 너무나 잘해주셨기 때문에 글 쓸 맛이 나지 않는다. <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소거법으로 결국 <바보선언>에 대해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보선언>은 이야기가 잘 짜인 일반적인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물들의 일련의 춤사위에 가깝다. 사실 <바보선언>은 그 당시 80년대 영화검열로 인해 단단히 마음이 상한 이장호 감독이 검열을 피해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천재적이고 실험적인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93분 동안 대사는 거의 없으며 남자아이의 내레이션이 대신 그 공간을 채운다. 또한 전자오락소리, 국악, 팝송 등이 짬뽕되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게다가 흥행에 까지 성공한다. 아마도 그 당시 연희동 안방에서부터 시작되는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갈증 때문일 것이다. 영화검열이 휘두르는 칼질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옆구리를 콕콕 찌르듯 사회 다방면을 풍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우민화 정책, 무궁화를 달고 계시는 그분들을 향해 보내는 씻김굿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일이 나열하면 자수(字數)나 채워 빨리 게임하려는 속셈에 지나지 않으므로 하지 않기로 하고 나머지 것들은 영화를 보며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니 직접 찾아보시길 바란다.

다만 영화 속 몇 안 되는 대사 중에 감명 깊게 들었던 대사를 언급하고자 한다. 바보 똥칠이 말한다. “세상이 갑자기 싫어져요. 눈앞이 캄캄해요” 가짜여대생 혜영이 대답한다. “까만 안경을 꼈으니 캄캄할 수밖에 없지” 그저 썰렁한 말장난으로 여겨지겠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나 우리세대나 눈앞이 캄캄한 것은 까만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혹여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해 명쾌한 해답을 찾아냈지만 공간이 부족하여 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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