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 못해도 즐기면 그것이 바로 '취미'…취미는 '프로' 아닌 '아마추어' 영역
피아노, 만년필 쓰기, 매듭공예 등 나만의 취미 갖는 사람들…"지친 일상에 재미를"

 

 

새 학기가 되면 선생님은 하얀 종이를 나눠주며 가족관계, 장래희망 등 인적사항을 적어 내라곤 했다. 종이에 적힌 여러 질문 가운데 가장 곤혹스러웠던 질문은 바로 '취미'였다.

누군가 "취미가 뭐야?"라고 물으면 "음…취미?"라며 뜸들이다가 '독서'라고 답했다. 확신이 없었다. '내 취미가 독서인 게 맞을까?'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짝꿍도 뒤에 앉은 친구들도 '독서, 영화감상, 음악듣기'와 같은 '취미 3종 세트'에서 벗어나질 않음을 확인하곤 맘이 놓였었다.

가끔 '바이올린 연주'같이 '고상한' 취미를 적은 친구를 보면 참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뤄내야 그것이 '취미'라는 오해. 그 오해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다. 어쩌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했던 탓도 있다. 잘 하지 못해도 내가 재밌어하고 즐기는 것이 취미인데. 취미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영역인데 말이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고루한 질문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취미(趣味)란 1.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취미란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전 속 의미의 '취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즐기며 사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니 말이다. <한국리서치>가 2013년 발표한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이 결과에 따르면 전국 도시에 사는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취미 없는 사람 비율’을 조사한 결과가 2006년에는 10.2%였던 반면, 2012년에는 19%를 기록해 6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2명이 취미가 없다고 답한 것이다.

취미를 갖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 시간적 이유 때문이다. 박진나 씨(대학생·22)는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집에 오면 보통 밤 10시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며 “바리스타 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되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박 씨는 쉴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취미가 바로 '만년필 쓰기'이다.

#1.'만년필' 네가 있어 다행이다 / 박진나 씨(대학생·22)

만년필로 일기를 쓰는 게 취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재밌고 때론 내게 안정감까지 주는 일이니까 취미가 맞는 걸까. 일주일 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은 없었고 스트레스는 심해졌다. 뭔가가 하고 싶었고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를 사다가 만년필이 눈에 띄었다. 가격도 생각만큼 비싸지 않아 구입했다. 하루에 5분~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쓸 때마다 만년필을 사용한다. 종이와 펜촉이 닿을 때 느낌이 정말 좋다. 재밌기도 하고 특별한 기분이 들며 마음도 편안해진다. 만년필아~ 천년만년 내 곁에 있어줘! 

#2. 나, 피아노 치는 남자야 / 강승원(신문방송·10)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 쑥스러워. 지금은 바빠서 못 하고 있지만 잠깐 배웠지. 지난 학기가 마지막 학기였는데 학교만 다니기 무료하더라. 악기에 대한 관심 하나씩 있잖아? 기초인 바이엘부터 배운 건 아니고 원하는 곡 2곡정도 배웠어. 취미로 잠깐씩 배우는 사람들이 있긴 하자봐. 피아노 학원에서도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더라고. 난생 처음 치는 피아노이니 당연히 서툴렀고 어색했어. 그런데 이게 하다보니까 재밌더라.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랄까. 평소에 좋아했던 곡을 내가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말이야. '피아노 치는 남자' 어렵지 않더라.

#3. 홍차수집, 드라이 플라워, 블로거...취미는 다다익선?/ 이은호 씨(대학생·21)

제 취미는, 블로그 하기, 홍차 수집, 드라이 플라워 만들기, 인테리어(?)인데요. 취미가 조금 많죠? 한번 뭔가에 꽂히면 하는 성격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왜 하느냐고 물으면 ‘좋아서’라고 밖에는 말 못 하겠어요.
블로그는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게 좋아요. 홍차 수집이나 드라이 플라워같은 취미도 블로그하면서 생겼습니다. 블로그가 취미 동호회 같기도 해요.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즐기는 거죠. 시간과 돈이 들기도 하고 때론 상당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는 생활 속에서 찾는 소소한 즐거움이 주는 행복이 커요. 직접 꾸민 방이나 예쁘게 말려진 꽃은 볼 때마다 눈이 즐겁죠~

#4. 전주까지 찾아가서 배운 매듭 공예 / 정소은(의류·13)

나의 취미는 전통 매듭공예다. 작년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광주에서는 전문적으로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매주 1번 씩 전주로 배우러 갔다. 색색의 실로 책갈피나 장식 등을 만든다. 나비 모양, 리본 모양 등 어떤 색의 실로, 어떤 모양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져 배우는 재미가 크다. 만든 매듭들은 주로 주변에 선물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좋다.

매듭을 하며 배운 점도 있다. 처음에는 매듭을 하다 실이 엉키거나 잘못 되면 "다시 하면 되지"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한번 잘못된 실은 올이 나가는 등 꼭 문제가 되더라. "다시 하면 된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잘하자”로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 취미를 즐기면서 오늘도 배운다

 

 

▲새로운 재미, 취미 너로 정했다

헬스를 통해 건강도 찾고, 재미도 찾는 이재근 씨(경제·12)는 "돈과 시간이 없어서 취미를 즐기는 못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이 힘들기 때문이다"라면서 "평일에서 주말을 기다리며 고된 하루를 버티듯 취미도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동현 씨(토목공학·10)는 순간 속에 영원을 담는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다. 그는 "취미란 금전적인 목적이 아닌 기쁨을 얻는 활동이다.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게 참 좋다"며 "취미란 어려운 게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취미로 삼으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제 곧 봄이 온다. 밥처럼 당연한 일상에 새로운 반찬 하나를 올려보는 건 어떨까? 지루한 일상의 활력소가 될 취미. 취미라는 반찬 덕분에 당신의 밥상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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