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신비의 나라 터키. 내게도 터키는 꼭 한 번 가고 싶은 특별한 나라였다.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계획하면서 별 고민 없이 터키행 비행기를 예약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블로그를 뒤져가며 정보를 모으며  출발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던 무렵, 갑자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김 군과 터키

“요즘 터키 난리던데, 정말 가는 거야?” “지금 터키 가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 “너 터키 갔다가 IS에 잡혀가는 거 아냐?”. 18세의 김 군이 터키에서 실종됐다는 뉴스로 여기저기 떠들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 군이 IS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더해지면서 터키는 인류 문명의 요람이어서 신비로운 나라가 아닌, IS의 위협에 있는 ‘신비로운(?) 나라’가 되었다.

사실 나도 불안했다. 첫 해외여행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백만 원 달랑 들고 떠나는 배낭여행지가 테러 단체의 본거지라니. 그렇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이 넘는 긴 비행에 지칠 무렵, 어느덧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한 이스탄불은 한국에서 상상했던 공포, 테러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명불허전 세계적인 관광지로 볼 것들이 넘쳐났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터키에 왔구나 설레고 두근거렸다.

 

이슬람 종교, 내겐 낯선 이방인의 문화

이스탄불에서의 아침. 낯선 노랫소리가 날 깨웠다. “알이가 유오우 오새~” 알아먹기 힘든 터키어였다. 알고 보니 기도하는 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잘 알려진 대로 터키는 인구의 98%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이다. 때문에 터키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 알라신에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기도할 시간이 되면 노래로 알려준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엔 이색적이고 재미있던 이 노랫소리가 자꾸 듣자 소음으로 느껴졌다. 다른 종교, 다른 민족 문화에 대한 내 안의 폐쇄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IS의 출발도 이런 폐쇄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니,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새롭고 익숙한 두 종교와의 만남

한편 터키에도 기독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카파도키아라는 도시에는 화산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아름답고 신기한 기암이 있다.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장관인데, 그 기암 속을 자세히 보니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인들이 숨어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도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지하 85m까지 내려가는 도시를 구경하려면 작고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야 했다. 통로 곳곳에는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그림이 있었다.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의 문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인 아야 소피아 성당도 찾았다. 이 성당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성당일 때의 모습은 대부분 이슬람 사원임을 나타내는 문양 등으로 훼손되어 복원 단계에 있었지만, 그 덕분에 이 성당은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두 종교의 모습을 한 건물에 품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역설이 흥미로웠다.

 

시리아 떠나온 난민들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이스탄불로 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시 찾은 이스탄불은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터키의 종교와 문화를 접하고 온 덕분인지 그제야 터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광객에게 알아듣지 못할 말로 열심히 물건을 파는 상인들, 길거리 구석진 자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아빠, 그 옆에 신발도 신지 않고 앉아 외국 관광객들을 쳐다보는 아이들...

 

무엇보다 시리아에서 피난 온 난민들이 많았다. 제대로 된 옷도 없이 길거리에 떨고 있는 시리아 아이들도 굉장히 많았다. 난민들은 외국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내게 다가온 난민은 “아이엠 프롬 시리아”라고 말을 걸었다. 시리아 사람이라니 ‘IS’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어눌한 영어로 “나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배가 너무 고프다”며 울먹였다. 그들을 보면서 종교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존재하는 것인지 복잡한 숙제를 만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터키를 떠나기 전, 추위에 반팔 옷만 입고 떨고 있던 아이에게 갖고 있던 손난로를 줬다. 돈이 아니라서 실망할 줄 알았는데 따뜻하다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했다. 시리아, IS, 테러...그렇지만 내가 간 터키에는 보통 사람들이 힘겹게 그 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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