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첫키스, 첫만남, 첫눈…‘첫-’이라는 말만큼 우리를 설레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요?

처음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련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처음 시도하는 경험이 누군가에는 아픈 기억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각자의 사정으로 이름은 밝힐 수 없는 애봉이, 참치, 핑크돼지, 푸, 1108 님의 다양한 첫경험을 <전대신문> 기자가 재구성해 들려드립니다.

학고가 사는 세상 / 참치 님

학고(학사경고)가 별 거 인가요? 대학생이라면 살면서 학고 한 번 정도는 받아봐야지.

나는 전남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오게 되어 무척 행복했다.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을 맺은 것 같아 뿌듯했고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학기 초 동기들과 함께 놀면서 열심히 공부했으니 이제 쉬어 갈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그때부터 난 마음껏 놀았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친구한테서 “너 커서 뭐 되려고 그러냐?”는 말도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이 놀러 다니던 친구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 충격이 컸다. 이때가 슬럼프였다. 잠시 머리를 싸매고 ‘사람은 역시 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하지만 공부할 생각을 하려니 골치가 아파왔다. 그래서 며칠 후 다시 놀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살면서 이 정도로 즐길 수 있는 시기가 많지 않다. 고등학생 시절엔 수능 준비한다고 못 놀고 그 전엔 어린애라서 뭘 하면서 놀아야 하는지 모른다. 대학시절이야말로 자신의 노는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최적기라고 생각한다.

막상 학고라는 것도 받아보면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내가 한 학기 정말 즐겁게 지냈구나’라는 징표가 되기도 하고 공부 좀 하면 장학금 받기도 쉬우니까. 어중간하게 공부를 할 바에야 맘 놓고 제대로 노는 게 낫지 않나? 한 번만 받으면 서운하니까 두 번 연속으로 받는 것도 나름대로 메리트가 있다. 사실 두 번 까지는 안전하거든.

기록에 남지 않냐고? 에이, 그런 걸 걱정하면 언제 놀겠나. 놀고 싶으면 지금 당장 놀아라.

이별,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어도 경험이다 / 핑크돼지 님

대학에 들어와 모든 사람들이 말리던 C.C(Campus Couple)를 시작했다.

내 첫 남자친구는 동갑인 새내기였다. 우리 둘다 C.C의 단점을 많이 들어왔던 지라 비밀연애를 하기로 했다. 비록 학교에서 내내 붙어 있지는 못하지만 남몰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스릴에 비밀연애도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그는 항상 바빴다. 타지에서 온 그는 주말이면 고향에 간다는 핑계로 자주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시험 전날 술을 진탕 먹은 것 같은 그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동기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던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 그의 동기인척 페이스북 메세지를 보내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어떤 여자에게 메세지가 왔다. 그의 친구라며 자신을 소개하던 여자는 그의 상태를 걱정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그녀의 묻는 말에 대답 했다. 친절했던 나의 대답덕분인지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그와 고등학교 때부터 사겨온 800일 된 여자친구란다. 당황했지만 곧 나도 말했다. “전 126일 사귄 여자친구인데요.” 이에 그녀는 나의 휴대폰 번호를 물었고 우리는 긴 통화 끝에 그가 약 4개월동안 양다리를 걸쳐온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끝이 났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큰 화를 내지 않았다. 그와 말 한마디 섞기 싫었다. 내 친구들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 생매장 시키라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 그럴 힘조차 쓰기 싫었다. 첫 연애의 달콤함도 잠시 첫 이별의 경험은 쓰디 쓰기만 했다.

 
여성흡연자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 / 애봉이 님

스무살이 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버거웠다.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을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내가 한 일에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생각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갔다.

호기심 반 스트레스 반으로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속으로 들어오는 연기에 기침을 연거푸 하면서 점점 적응해 나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내게 옆에 있는 것은 담배뿐이었다. 담배를 필 때면 이 아이만이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만 같아 자꾸만 손이 갔다.

여성 흡연자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 친한 친구에게 말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내 흡연 사실을 아는 사람은 10년 된 친구 딱 두명뿐이다. 그들에게 처음 말했을 때 다행히 쉽게 이해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카페에 가면 흡연석에 앉자고 하기가 망설여졌다.

남자친구에게는 말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들키지 않으려 엄청난 노력을 했다. ‘흡연사실을 말해볼까?’ 수없이 고민해봤지만 이 사실을 알면 그가 변할까 두려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2015년, 담배 값이 오른다고 한다. 2000원이나 인상된다는 소식에 새해 목표를 ‘금연’으로 잡았다. 다시 담배에 손이 갈까 무섭지만 대한민국 여성 흡연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처음 신은 신발이 고무신이었네 / 1108 님 

시작은 나였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것처럼 좋아한다는 고백도, 사귀자는 고백도 내가 했다(지금 생각해보니 나 꽤 용기 있는 여자였네?.

그렇게 대학 와서 3년 만에 처음 신은 신발이 고무신이었다. 3년간 함께 솔로였던 내 친구는 솔로탈출 10일여 만에 반 솔로가 된 나를 꽤나 환영했다.

눈에서 멀어진다고 마음에서도 멀어지진 않지만(새내기 고무신이잖아) 정말 때로는 옆구리가 과하게 시렸고, 남자친구가 미웠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훈련소 초반에는 소식을 알 수 없어 걱정이 과해지기 때문.

그러다 옆구리가 괜찮아지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편지’다. 첫눈 왔던 날 첫눈처럼 왔던 남자친구의 첫 편지는 정말 첫눈처럼 설렌다. 그리고 생각보다 편지로 하는 연애는 달다.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무슨 내용을 쓸까 고민하고, 손이 저리도록 편지를 쓰고, 고이 접어 편지를 부치고 다시 답장을 받기까지. 꽤 다정스럽다.  

예비 고무신과 군화가 이 글을 읽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연애도 나름 할 만 하다. 편지의 소중함을, 전화 한통의 간절함을 배우게 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된다. 20대 초반, 지금이 아니면 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1년 9개월, 아니 1년 8개월 남았다. 고무신이라 가끔 땀 차면 벗겨지기도 하겠지만 다시 주워와 주길 바라야지 별 수 있나. 이미 신은 고무신인데… 이 남자 보고 있나? 

독립, 두 번 세 번 생각하길 / 푸 님

고등학교 때부터 꼭 독립을 해보고 싶었다. 자유롭게 내 맘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기대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생이 된 후 꿈을 이루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독립, 시작은 너무 좋았고 기대했던 대로였다.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 없는 나만의 공간, 내 맘대로 먹고 눕고 뒹굴고 자면서 하루하루 행복한 날들을 즐겼다. 늦게 들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건 또 하나의 메리트였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남들은 집에서 푹 쉴 텐데 왜 난 여기에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놀던 친구는 이제 나오라 해도 귀찮다며 나오질 않았고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니 자연스레 생활이 나태해졌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아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웠고 학교가 가까워서 맘 편하게 PC방에서 날밤을 샜다. 학교에서 집까지 얼마가 걸리던 지각할 사람은 한다는데 그 지각할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리고 이상한 일인데 밥이 그리워져 밥통을 뒤지면 항상 비어있었다. 밥은 분명 원룸에서 제공하기로 했는데 나는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매번 밥을 쓸어 담아가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언제부턴가는 친구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찾아와 자연스레 내 방에서 잠을 청했다. 내 방이 분명 자기네 하숙방은 아닌데. 자주 오다 보니 이제는 밤이면 밤마다 내 방문을 두드린다.

독립을 하려한다면 두 번 세 번 생각해라. 집을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집 위치를 알리지 마라. 여러분의 생각과는 분명 다르다. 알려지는 순간 당신의 방은 이미 모두의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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