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상황을 만들었고 상황은 그의 삶을 파괴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대만으로 유학 온 프레드 친 씨(Fred Chin)는 유학생활에 잘 적응하고자 유학관련 기관을 자주 방문했던 것이 화근이 돼 계엄령 당시 12년 동안 수감됐다. 그는 “참기 힘든 고문을 받으며 3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지만 기적적으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사상교육을 받은 뒤 출소했지만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계엄령 당시 국제법에 따라야했기 때문이다. 프레드 친 씨는 “ID카드가 없어 구직을 할 수 없었기에 거지와 다름없는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 시절은 감옥에 있었을 때보다 더 힘들고 치욕스러운 생활로 기억된다.

대만 정부는 1949년 계엄령 이후 백색테러(권력자나 지배 계급이 반정부 세력이나 혁명 운동에 대하여 행하는 탄압)를 통해 반대세력들을 통제했다. 프레드 친 씨는 “아무도 무엇인가를 주장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며 “누군가 인권에 대해 말하면 다음날 감옥에 갇힐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거리 곳곳에는 허위로 된 정치 선전이 즐비했고, 일상생활에는 정부가 심어놓은 정보원들이 곳곳에 있었다. 피해자들은 정치범으로 몰려 누가, 어떤 이유로 자신을 고발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았다.  

억압의 시절을 살았던 프레드 친 씨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완전한 민주주의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의 민주화 역사가 보전되기 위한 노력도 강조했다. 시간이 지난만큼 당시의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레드 친 씨는 “피해자 중 한명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알리고,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것은 의미있다”며 “피해자들은 당시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고 소통할 때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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